
미량의 우라늄도 꼼짝마!
정밀분석을 위한 시료 선별 장비 ‘MMXRF’원자력 시설에서 발생하는 핵물질은 흔적을 남긴다. 이 흔적 속의 방사성원소를 분석하면 농축이나 재처리 활동이 있었는지, 어떤 형태의 핵연료를 사용했는지, 어느 발전소에서 나왔는지 등 다양한 정보를 알 수 있다. 핵활동 분석 결과에 따라 미신고 핵활동이 드러나게 되면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해 체결된 핵확산금지조약(NPT)에 의거하여 국제원자력기구(IAEA)로부터 강력한 제재 조치를 받게 된다.
원자력 발전이 전력생산량의 40%를 차지하는 우리나라의 경우, 혹시라도 모를 미신고 핵활동으로 인한 제재는 국가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원자력 시설에서 발생하고 있는 핵물질의 정성ㆍ정량적인 분석이 매우 중요하다.
‘MMXRF’를 통해 핵물질 정밀분석이 필요한 시료 선별
핵안보 및 핵비확산을 통한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주도하고 있는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KINAC)은 최근 MMXRF (Monochromatic Micro Xray Fluorescence, 마이크로 X선 형광 분석기)의 개발을 마쳤다. MMXRF는 원자력 시설에서 발생한 미량의 핵물질 시료를 채취해 우라늄, 플루토늄을 비롯한 다양한 방사성원소의 함량을 검출하고 분석할 수 있는 장비다. 지난 2012년 우라늄 분석에 최적화된 MMXRF 개발에 착수하여 2015년 개발을 완료하였으며, 2016년 등록한 특허의 전용실시권을 2017년 민간 기업에 이전했다.

▲ MMXRF 장비(우)와 분석화면(좌), 분석창의 붉은색이 진할수록 우라늄 함량이 높은 부분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미신고 핵활동이 한 번도 적발된 적이 없다. 그만큼 핵물질 사용에 대한 통제가 엄격하게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실수로라도 발생하게 된다면 IAEA의 사찰과 제재가 잇따를 수 있다. MMXRF는 IAEA의 분석 결과를 우리만의 기술을 사용하여 독자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장비다.

▲ 분석을 위해 시료를 장비에 장착하고 있는 모습
MMXRF는 핵물질 시료의 정밀분석에 앞서 정밀분석의 필요성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준다. 정밀분석은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소요되므로 모든 시료의 분석을 의뢰했을 때 투입되는 예산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MMXRF의 분석결과를 통해 추가 정밀분석이 필요한지, 어떤 정밀분석을 거쳐야하는지를 결정할 수 있어 의심되는 시료만 선별할 수 있다. 특히, 별도의 전처리를 거치지 않고 방사성핵종을 정성ㆍ정량 분석할 수 있어 시료의 원형을 보존하고 분석결과의 재현이 가능하다.
모든 원소는 X선을 쏘였을 때 외부로 방출하는 에너지, 즉, 특성 X선의 에너지가 서로 다르다. MMXRF는 이러한 원소의 특성을 활용하여 시료의 단위면적당(1 mm2, 9 mm2) 우라늄의 존재위치와 함량을 분석할 수 있다. 이를 위해 초점이 매우 좁은 X선 관을 활용한다. 분석을 하는 단위면적의 넓이를 경우에 따라 다르게 설정하기 위해 X선 관과 시료 사이의 간격을 조절할 수 있다. 광학계(DCC, Doubly Curved Crystal)는 원소의 특성을 표시해주는 단일에너지의 특성 X선만을 시료에 입사시킨다. 시료에서 발생된 형광 X선은 반도체 검출기를 통해 고분해능으로 분석된다.
북한의 핵활동 역추적에 기여

▲ 분석 결과를 검토하고 있는 모습
MMXRF 개발의 주요 목적 중 하나는 북한이 국제사회의 핵사찰 요구를 받아들일 경우 어떤 핵활동을 했는지 추적하는 것이다. 북한은 NPT 탈퇴를 선언하고 핵무장을 위한 핵실험을 감행해오고 있다. 그에 따른 핵사찰도 거부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는 북한이 핵사찰을 받아들이거나 통일이 되었을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
KINAC은 북한이 핵사찰을 수용하게 되면 북한 원자력 시설로부터 들여온 시료를 MMXRF로 분석해 농축이나 재처리 활동에 대한 정보를 역추적한다는 계획이다. MMXRF를 담당하고 있는 서하나 선임연구원은 “언젠가 북핵을 검증할 시기에 대비하여 다양한 원소를 분석할 수 있도록 장비를 고도화하고 있다.”며 “원자력 시설에서 수집된 모든 원소의 정보를 알게 되면 농축, 재처리, 발전소 유형, 시료의 냉각유무 등을 다양하게 분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서는 우라늄 이외의 다른 원소에 대한 분석 기술이 필요하다. KINAC은 지난 2015년 지르코늄, 티타늄 등에서 발생하는 특성 X선을 분석할 수 있는 검출기를 추가로 도입하여 분석 역량 확보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서 연구원은 “핵연료봉 내부에 위치하는 가돌리늄과 같은 원소가 핵연료를 취급하지 않는 곳에서 검출되는 경우나 핵연료의 종류를 특정할 수 있는 몰리브데늄이 검출되는 경우에 해당 원소가 검출된 위치에서의 핵활동을 추적할 수 있기 때문에 우라늄뿐만 아니라 그 외 원소들의 분석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우수성
KINAC의 MMXRF는 세계적으로도 인정받고 있다. 우수한 규격과 성능에 독일에 있는 유럽연합 공동연구센터 내 초우라늄원소분석연구소(EU-JRC/ITU)가 높은 관심을 갖고 구매의사를 타진해 온 것이다. ITU는 IAEA가 입자시료를 의뢰할 수 있는 기관(NWAL)으로 인정할 만큼 공신력이 있다. 전세계 핵비확산 관련 기관들의 시료를 분석하고 있어 가동률도 가장 좋다. 서 연구원은 “ITU가 우리 장비를 구매한다면 우리 실험결과와 교차 분석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며 “현재도 공동연구를 진행하고 있는데 ITU에서 근무하는 연구원들도 적극적인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 MMXRF 장비를 담당하고 있는 윤종호 선임연구원(좌)과 서하나 선임연구원(우)
IAEA의 분석장비인 TRIPOD와 MMXRF의 성능을 비교해보면 왜 ITU가 관심을 갖고 있는지 그 우수성이 확연히 드러난다. 우선 검출하한치가 낮아 미량의 시료도 분석 가능하다. TRIPOD는 14 나노그램(ng)인데 반해 MMXRF는 2.3 나노그램(ng)이다. 분석 소요시간은 2시간으로 4시간이 걸리는 TRIPOD에 비해 훨씬 짧다. 검출면적은 TRIPOD 36 mm2 보다 4배 작은 9 mm2 의 높은 해상도로 세밀하게 분석할 수 있다.
서 연구원과 함께 장비를 운용하고 있는 윤종호 선임연구원은 “전세계적으로 IAEA와 미국의 LANL (Los Alamos National Laboratory)만이 MMXRF를 보유하고 있어 희소성이 높게 평가되고 있다.”며 “공신력 있는 기관인 ITU의 인정을 받을 만큼 우리 기술에 대한 자부심이 생긴다.”고 말했다. KINAC은 올해 2월 1일 MMXRF의 특허 전용실시권을 장비 제작회사인 주식회사 아이에스피에 이전하고 기술의 사업화를 추진하고 있다. 최근에는 인도의 관련 기관에서도 관심을 보이며 KINAC을 다녀갔다. KINAC은 MMXRF라는 선진화된 기술이 국제 핵비확산 및 핵안보 체제의 확산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