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처 라이프 KINAC이 추천하는 과학ㆍ문화 이야기

끔찍한 과거에서 현실의 교훈을 얻다,
드라마 <체르노빌(Chernobyl)>




체르노빌(Chernobyl, 2019)은 미국 HBO에서 제작한 5부작 미니시리즈 드라마이다. 1986년 4월 26일 일어난 동명의 폭발 사고를 다룬 이 드라마는 영상물 평가 사이트 <IMDb>에서 평점 9.7을 기록하며 드라마 부분 역대 최고점을 획득하는 등 큰 화제를 불러모았다. 드라마가 전달하는 메시지와 연출, 뛰어난 영상미가 높은 평가를 끌어냈다.

체르노빌은 과거이면서 동시에 현재이다

▲ 90초 이상 서 있으면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원자로 옥상에서 잔해물을 치우는 병사(왼쪽). 극 중 가장 충격적인 장면 중 하나이다. 실제 작업 현장을 기록한 사진(오른쪽). c. imdb/Igor Kostin

방사능 때문에 이온화되어 청적색으로 빛나는 노을, 사람들이 떠나 하루아침에 적막 속에 잠긴 도시, 강제 동원한 청년을 실어 나르는 버스의 끝없는 행렬 등등……. 드라마 체르노빌은 당시의 끔찍했던 현실의 일면을 별다른 연출 없이 담담한 어조로 화면 위에 드러낸다. 불필요한 극적 연출을 생략하는 화면 구성과 구소련의 차량 번호표, 촌스러운 안경까지 그대로 복각한 치밀함 덕분에 시청자는 마치 자신이 사건 현장에 있는 것만 같은 극적 몰입감을 경험한다.

폭발 후 이어지는 일련의 에피소드는 극에 몰입한 시청자에게 큰 충격을 선사한다. 초고농도 방사능에 노출되었을 때 인체에 어떤 변화가 일어나는지, 사후 처리에 얼마나 많은 인력과 자원이 들어가는지, 방사성 물질 노출이라는 인간의 능력을 벗어난 재앙이 일어났을 때 어떤 식으로 인간성이 말소되는지 지켜보면서 시청자는 체르노빌 사태의 심각성과 마주한다. 그리고 35년 가까운 세월이 지난 지금도 체르노빌은 방사능을 뿜어내고 있다는 언급과 함께 극 중 상황은 시청자의 현재와 이어진다. 화면 속 비극은 곧 나를 둘러싼 현실이기도 하다.

체르노빌은 인류의 책임

체르노빌의 폭발은 인재다. 5화 구성 중 1, 2화는 사건이 터진 직후 혼란스러운 현장의 모습을, 3, 4화는 원자로의 불이 꺼진 후 사태를 수습하는 과정을, 마지막 화인 5화에서는 실제 재판 과정을 그대로 재현했다. 각각의 파트는 체르노빌의 비극이 우연이 아니었음을 분명하게 드러낸다. 무리한 시험 운행과 현실을 부정하는 어설픈 초기 대응 과정, 프로파간다에만 열중하는 고위 관료의 모습과 죽음의 원자로를 앞에 두고 너희의 수명을 국가에 바치라는 장교의 외침에서 체르노빌 사태가 벌어질 수밖에 없었던 필연성을 찾을 수 있다.

▲ 재판 중 판사에게 어떻게 원자로가 폭발했는지 설명하는 레가소프 박사. 모든 것은 인간이 좌초한 인재였다. c. HBO

고도로 시스템화되고 복잡해진 현대 사회는 단 한 명의 사탄의 등장을 허용하지 않는다. 원전 사고 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결정하는 재판 중 주인공 레가소프 박사는 이 사건이 안전보다 개인의 영달을 우선시하고, 안전보다 일상의 편안함을 추구했던 국가와 인민 모두의 책임이라고 비난한다. 안일함이라는 독이 원자로 안에 차곡차곡 쌓였기 때문에 체르노빌은 폭발했다. 하나의 결정적인 폭발 스위치는 존재하지 않는다. 연관된 모든 인물과 이해관계가 마치 시곗바늘처럼 원자로 폭발이라는 사건을 향해 움직였다. 이런 의미에서 체르노빌은 거대한 시한폭탄이었다. 언젠가는 벌어질 일이었으며 그것이 '1986년 4월 26일 1시 23분 45초'(드라마 1화의 제목)였을 뿐이다.

사건을 일으키는 것도 사태를 수습하는 것도 결국은 인간이다. 드라마 속에는 전 유럽이 방사능에 오염되는 최악의 상황을 피하고자 목숨을 내놓으면서 희생한 소방수, 광부, 군인, 과학자가 등장한다. 이들의 희생이 없었다면 지층을 뚫고 지하수와 접촉한 4번 원자로가 말 그대로 폭발하여 체르노빌과 그 주변의 모든 원자로가 불타올랐을 것이다. 만약 그랬다면 적어도 유라시아 대륙의 절반 이상이 수만 년 동안 생명이 살 수 없는 죽음의 땅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거짓의 대가는 무엇인가?

드라마 <체르노빌>속 진실은 소름 끼치도록 생생하다. 과거의 진실을 통해 이 드라마는 우리에게 미래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재앙이 닥쳤을 때 국민을 기만하고 거짓을 일삼지 않을 수 있는가? 우리는 원자력이 불러올 부정적인 파급력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가? 똑같은 비극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는가? 하얀 석관 속 체르노빌은 끔찍한 재앙이었지만 그래서 교훈이기도 하다.<체르노빌>은 이 세상에 100% 완벽히 제어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만약 모든 것을 완벽히 통제할 수 있다는 오만에 빠진다면 분명히 그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거짓의 대가는 무엇인가(What is the cost of lies)?' 드라마의 시작과 끝에서 주인공 레가소프는 이런 질문을 던진다. 과학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과학을 실행하는 주체는 거짓말의 천재인 인간이다. 제2의 체르노빌, 제2의 후쿠시마는 이 거짓 때문에 또 다시 생겨날지도 모른다. 이를 막기 위해서는 각자의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 과학기술은 양면적이다. 한편으로는 인류의 생활을 안락하게 만드는 유용한 도구이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인류를 파멸로 몰고 갈 무기로 바뀌기도 한다. 이렇게 과학기술의 양면성을 어디로 끌고 갈 것인지는 우리의 몫이다. 따라서 우리는 과학기술이 잘못 사용되지 않는지 감시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토론하고, 공론화할 의무가 있다. 또한 우리는 안락보다는 안전을 우선시하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그래야 한 사람의 영웅에 의존하지 않고도 위기 상황에 잘 대처하는 시스템이 만들어질 수 있다. 드라마 <체르노빌>은 오늘날의 사회와 인간을 위한 역사 교과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