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 전략물자 수출, 간편해지고, 빨라지고, 정확해진다!

KINAC의 전략물자 심사지원 시스템, IXCRS

흔히 한국의 경제구조를 수출주도형 경제'라고들 말한다. 내수 규모가 적지는 않으나 충분치 않고, 국가경제의 상당부분을 수출입에 의존하기 때문에 해외와의 교류가 경제구조를 유지하는 데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이다. 사회 일각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유무역협정을 꾸준히 추진해 온 이유도 우리나라의 이러한 경제적 특징에 있다.

▲ 컨테이너 화물이 바삐 오가는 항만. 수출주도형 경제구조를 지닌 한국에서 자유로운 수출입은 매우 중요하다. © KBS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는 자유로운 수출입이 문제가 될 때도 있다. 바로 안보와 직결된 경우다. 특히 핵무기나 생화학무기등으로 전용될 수 있거나 이러한 무기의 개발, 제조, 이용에 활용될 수 있는 물품들의 자유로운 수출입은 국가 혹은 국제사회 안보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통상적으로 이러한 물품들을 전략물자라 칭하며, 전략물자는 국제협약 등에 따라 철저히 감시받는다. 2001년 9.11 테러를 계기로 발의된 UN안보리 결의 1540호(2004년)는 전략물자의 관리(통상 전략물자수출입통제라 함)가 국제규범으로 자리잡는 계기가 되었으며, 모든 UN회원국의 의무가 되었다.

▲ 한국의 전략물자관리제도의 개요. 원자력 전략물자는 KINAC에서 별도로 관리하기도 한다. © KOSTI

특히 원자력 분야는 핵비확산이라는 국제사회의 중요한 공동목표가 있어 UN안보리결의 외에도 여러 국제협약에 의해 규제받는다. 핵비확산조약에 따라 1974년 설립된 쟁거위원회, 1975년 결성된 원자력공급국그룹 등이 이에 해당하며 한국은 이러한 모든 국제수출통제체제에 가입돼 있어 최고수준의 원자력 수출입 규제를 이행하고 있다.

규제대상인 전략물자의 범위는 생각보다 넓다. 원자로 관련 기술 자체가 핵무기 개발에 필요한 핵물질 조달의 시작이기 때문에 원전 관련 품목과 기술은 거의 모두 전략물자라고 보면 된다. 또한, 이러한 물품뿐 아니라 관련 기술 및 기술문서도 전략물자로 분류됨에 따라 원전 관련 기업들 모두는 전략물자 관리에 신경을 곤두세워야 한다.

사실 전략물자 관리에 무언가 대단한 것이 있는 것은 아니다. 전략물자로 분류된다고 수출을 하지 못하는 것도 아니고 수출입 때마다 매번 허가를 받아야 하는 것도 아니다. 그저 원자력을 수출하는 기업이 수출하고자 하는 물품 혹은 기술 등이 전략물자에 해당하는지를 확인하는 사전판정을 신청해서 정부로부터 전략물자인지를 확인받고 '이 물품은 전략물자니 숫자 철저히 세고 주의해서 관리하라'는 정도의 표시를 해주면 된다. 그리고 전략물자를 실제로 수출하고자 할 경우 정부에 수출행위에 대한 허가를 신청하면 된다. 신청 자체도 '넵스(NEPS)'라는 온라인 시스템을 통해 간편하게 해결할 수 있다.



현장의 요구를 반영한 효율적인 심사업무 지원 시스템

▲ IXCRS를 시연하고 있는 양승효 KINAC 연구원.

기업의 신청은 간편해졌지만 정부 및 관련 기관의 심사는 그리 편해지지 않았다. 특히 UAE 원전과 요르단 연구용원자로 수출이 성사된 이후 심사 건수가 급격히 늘어나면서 심사 부담이 커졌다. 현재 전략물자 심사는 심사관이 신청품목이나 관련 기술문서를 일일이 살펴보고 최종 결정을 내렸기 때문에 시간도 오래 걸리고 일관성을 유지하기도 어려웠다. 이 때문에 기업의 수출입 활동에 혼선이 빚어지는 경우가 드물지 않게 발생했다. 향후 글로벌 원전 시장에 대응하기 위해서라도 효율적인 심사 시스템 구축이 시급한 실정이었다.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KINAC)은 이러한 현장의 요구에 따라 '지능형 전략물자 수출통제 시스템(이하 IXCRS)'을 개발하고 있다. 이 시스템은 '지능형'이라는 수식어대로 정보기술과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해 체계적, 객관적으로 전략물자 심사를 수행함으로써 심사 업무의 효율성을 높이는 데 구축 및 운영 목적이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전략물자 심사 신청건에 대해 정부의 빠르고 정확한 심사결과를 받아볼 수 있다는 장점과 더불어 심사결과가 일관성을 유지할 수 있어 전략물자 수출입 업무의 예측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장점이 있다. 쉽게 말해 지난번에는 수출 허가를 문제없이 받았던 제품이 이번에는 갑자기 불허 결정이 난다거나, 수출시에는 전략물자로 판정받지 않았는데 나중에 수입국 쪽에서 문제를 제기하는 것과 같은 당황스러운 일을 피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지능형'이라고 해서 스캐너가 수출물품이나 문서를 한 번 훑어보는 것만으로 전략물자인지 아닌지, 수출을 해도 되는지 안 되는지 판정해준다는 것은 아니다. IXCRS는 이러한 전자동 프로세스를 목표로 하기보다 심사관의 주관적 판단을 최대한 배제하고 일관된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의사결정지원 시스템에 가깝다.


심사관의 판단을 돕는 '최첨단 검색 시스템'

IXCRS의 핵심 요소는 데이터베이스와 검색시스템이다. KINAC의 연구자들은 IXCRS를 개발하기 위해 심사관의 심사 업무를 분석해 의사결정 과정을 명확히 하였으며, 이를 IXCRS의 핵심 의사결정 알고리즘으로 재구성했다. 이 알고리즘에 따라 심사업무를 순서대로 실행할 수 있도록 메뉴 항목을 구성하고 각 단계에서 필요한 정보를 손쉽게 확인할 수 있도록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고 이를 활용하는 의사결정지원시스템을 마련했다.

▲ IXCRS에서는 전략물자를 키워드로 간편하게 검색할 수 있다. 마인드맵 형식으로 연관정보를 보여줘서 추가로 확인할 정보를 쉽게 알 수 있다.



IXCRS 크게 세 가지 시스템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는 신청 물자가 전략물자인지 아닌지 판별할 수 있는 용어 데이터베이스 기반 시스템이다. 여기에는 전략물자에 해당하는 품목 정보와 영문 명칭, 관련 용어가 망라되어 있으며 간단한 키워드 검색으로 전략물자 여부를 판별할 수 있다. 다만 전략물자에 대한 판단은 기술변화, 국제정세와 같은 외부 환경에 따라 달라질 수 있으므로 검색화면은 단순히 해당 물자의 전략물자 해당 여부만을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이전 심사 결과, 유사 품목, 해외 사례를 종합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꾸며졌다. 이와 함께 단어 자체의 의미뿐 아니라 전체 맥락도 함께 고려하는 시맨틱 검색을 통해 연관기술이나 자료도 함께 제시함으로써 심사관의 판단을 도와준다.

▲ 데이터베이스를 어느 정도는 직접 관리할 수도 있다.

두 번째는 문서 간의 유사성을 측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심사 신청 시 제출된 문서에 전략물자와 관련된 정보가 포함돼 있는지 판단하려면 심사관은 수백에서 수천 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데이터베이스를 어느 정도는 직접 관리할 수도 있다. 방대한 양의 문서를 일일이 검토해야 한다. 그러나 심사관 각각의 심사경험, 전문지식 수준 등에 차이가 있음에 따라 유사하거나 동일한 문서에 대해 동일한 심사결과를 제시하지 못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 이는 우리나라에만 국한된 문제이기도 하다. KINAC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으로 문서 간의 유사성을 측정해서 현재 심사하고 있는 문서와 가장 유사한 문서를 데이터베이스에서 찾아줄 수 있는 시스템을 개발하였다. 이러한 시스템은 논문의 표절 여부를 알려주는 시스템과 원리상으로 동일하다.

세 번째는 도면 간의 유사성을 측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다. 도면 렌더링 이미지는 수출품목의 특징을 표현하는 중요한 자료다. 제시된 도면이나 이미지가 전략물자에 해당하는지 알아보려면 기존에 전략물자로 판정된 도면과 일일이 대조해 차이점이 무엇인지 확인해야 한다. 도면 데이터베이스와 검색시스템은 제출된 도면 자료를 벡터이미지로 변환해서 수학적으로 비교함으로써 기존의 도면과 얼마나 유사한지 구체적인 값으로 알려주므로, 이를 활용하면 도면을 일일이 뜯어보지 않고도 간편하고 쉽게 유사한 설계도와 이미지를 찾을 수 있다.


스스로 진화하는 '스마트 데이터베이스'

세 가지 검색시스템 외에도 IXCRS에는 중요한 기능이 하나 더 있다. 심사 과정에서 IXCRS를 이용해 검색한 결과를 리포팅하는 기능이다. 이 기능 덕분에 매번 심사때마다 별도로 기록을 남기지 않더라도 심사 과정 하나하나가 데이터베이스에 저장될 수 있다. 심사 횟수가 많아질수록 데이터베이스가 풍성해지고, 점점 더 정확한 검색결과를 내놓을 수 있다. 즉 IXCRS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화하는' 시스템인 셈이다.

심사건에 대한 검토를 모두 마치면 자동으로 보고서를 작성해주는 화면이 나온다. 이는 일반적인 보고서가 사실만을 적시하는 일정한 구조를 지녔다는 사실을 고려한 것으로, 해당 심사건에 특화된 문구만 입력해서 보고서를 간편하게 완성할 수 있도록 일종의 '자동완성 서식'을 제공한다. 심사 과정에서 검색하고 저장한 기록은 그대로 최종 보고서에 반영돼 보고서 작성에 걸리는 시간을 최소화할 수 있으며, 사람의 기억력의 한계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오류를 최소화한다.

▲ 지정된 절차를 거쳐 업무를 마무리하면 심사 신청건의 세부사항과 검색정보를 한눈에 확인할 수 있다. (좌)   아래의 '최종심사의견' 부분처럼 필요한 단어만 넣으면 보고서를 완성할 수 있도록 '템플릿'이 제공된다. (우)


IXCRS의 작동과정에서 볼 수 있듯, IXCRS의 목적은 고도로 훈련된 심사인력이 아니더라도 신뢰도 높은 심사결과를 낼 수 있게 함으로써 심사 업무의 효율성과 정확성을 높이는 데 있다. 또한 심사 건수가 축적될수록 시스템의 신뢰도도 향상되므로 심사업무 전체의 정확성과 효율성이 향상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연구진은 향후 IXCRS의 활용을 통해 데이터가 충분히 확보되면 빅데이터와 연계해 일부 심사 업무는 자동화하는 수준에 이를 수도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이와 함께 공항이나 항만의 현장에서 간편하게 전략물자 여부를 판가름할 수 있도록 '전략물자 식별시스템'도 IXCRS의 일부로 개발하고 있다. 전략물자 식별시스템은 심사시스템의 데이터베이스를 참고하되 간단한 수준으로 통관되는 물품이 전략물자인지를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더 정확한 판단은 실시간으로 KINAC에 심사 의뢰를 요청하는 방식으로 구성된다. 이는 수출통제 심사시스템의 주요 데이터베이스가 기업의 자산임에 따라 대외 유출이 엄격히 금지되어 있기 때문이다.

KINAC은 현재 IXCRS의 기본적인 시스템 개발을 마치고 데이터베이스를 다듬고 있으며, 실제 심사에 적용하기에 앞서 보안성을 확보하기 위한 시스템 운영정책을 수립하고 있다. 이르면 2017년 중 심사 현장에서 활용될 IXCRS는, 세계적으로 원전 시장이 재도약하는 기회를 맞아 한국의 원자력 산업이 세계무대에서 활약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