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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맞이 마음 채비 여행을 떠나자!




우리에게 1년 365일, 하루 24시간은 매일 반복되는 날들이지만 새해를 맞이하는 매년, 달력의 첫 장을 넘길 때면 많은 생각들이 뇌리를 스친다. 지난 한 해를 무사히 잘 보냈다는 안도감과 이루지 못한 것들에 대한 아쉬움, 성취한 것들에 대한 대견함 등 간단하게 정의할 수 없는 마음들이다. 2020년에도 여전히 우리는 당찬 목표와 함께 새로운 해를 맞이하며 또 나아갈 것이기에, 어쩌면 이 시기에 가장 필요한 것은 '멈춤'일지 모르겠다. 흐르는 시간 속에 잠시 멈춰서 그동안의 시간을 차분히 돌아보는 기회를 가져 보는 것이다. 나아갈 준비를 하는 이 계절, 더없이 좋은 새해맞이 여행을 추천해본다.

붉은 태양 속에서 희망을 보다

▲ 공현진 포구 일출 ⓒ한국관광공사

새해맞이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오르는 풍경은 해돋이이다. 거세게 몰아치는 겨울바람에도 흔들림 없이 떠오르는 태양은 활기찬 새 출발을 응원하는 것처럼 뜨겁기만 하다. 따스하게 대지를 품어주는 빛 속에서 새로운 다짐을 새기고 싶지만 사실 해돋이 명소로 가는 길은 그리 녹록치만은 않다. 빡빡하게 서 있는 사람들 틈에서 옆 사람과 부딪히는 것은 기본이고 꽉 막혀 있을 도로를 생각하면 조금 아찔하기까지 하다. 고요함 속에서 해돋이를 바라보며 새해 계획을 세우고 싶다면 공현진 포구를 추천한다.

공현진 포구는 강원도 고성군 죽왕면에 위치하고 있다. 다채로운 매력을 지닌 이곳, 공현진 포구의 옵바위 너머로 해가 떠오르는 모습은 정동진이나 추암, 호미곶 등 다른 일출명소와 견주어도 손색이 없을 만큼 절경이다. 이른 새벽 여명으로 채워진 고즈넉한 바다를 물끄러미 보고 있노라면 마음의 안식이 절로 느껴진다. 참았던 숨을 토해내듯 바위 틈으로 태양이 솟아오르고 고요했던 포구에 일상의 풍경이 펼쳐지면 이따금씩 철새 무리가 하늘을 가로지르며 새로운 활기를 불어넣는다. 겨울 철새의 군무는 보고 있으면 뜻하지 않은 선물을 받은 기분이 든다.

호젓하게 느껴지는 공현진 포구에 서서 태양이 옵바위의 빈 공간을 붉게 채우듯이 새로운 다짐과 열정을 마음에 채워보는 것은 어떨까?

순백의 공간에서 새로운 날을 꿈꾸다

소복하게 쌓인 눈밭을 걷다 문득 뒤를 돌면 지나온 나의 발자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다시 고개를 돌려 앞을 바라보면 아무 길도 나지 않은 새하얀 도화지가 무방비하게 펼쳐져 있다. 마치 새해를 맞은 삶의 행로처럼 한 발 한 발을 내딛을 때마다 발걸음은 새롭게 새겨진다. 온 세상이 하얗게 둘러싼 흰 숲에서 느리게 사색하며 새로운 출발을 하고 싶다면 인제 원대리 자작나무 숲을 추천한다.

▲ 원대리 자작나무 숲 ⓒ한국관광공사

하얀 눈밭 위를 감싸고 있는 흰 자작나무의 모습은 겨울을 배경으로 한 영화 속 장면으로 익숙하다. 하지만 북유럽까지 날아가지 않고도 강원도 인제에 가면 눈부신 속살을 드러낸 자작나무 숲을 만날 수 있다. 내뱉는 공기마저 하얗게 느껴질 만큼 새하얀 자작나무 숲은 생경하다 못해 신비롭기까지 하다. 여백 없이 꽉 들어찬 새하얀 자작나무 숲은 12월 중순부터 1월 말까지만 개방된다. 볼 수 있는 기한이 정해져 있다 보니 더 특별하게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지만 20미터까지 곧게 솟은 하얀 줄기를 보고 있노라면 탄성이 절로 터져 나올 것이다.

인제의 자작나무 숲은 1970년대 처음 심어져 2012년부터 일반에 개방되기 시작했다. 사실 자작나무는 보기에 아름다울 뿐 아니라 쓰임새도 유용한 식물이다. 단단하여 가구를 만들기에도 적합하고, 윤기 나는 자작나무의 껍질은 불이 잘 붙어 불쏘시개로 쓰기 좋다. 자작나무라는 이름 역시 '자작자작' 소리를 내며 탄다고 해서 붙어졌다. 얇은 표피는 과거에 종이를 대신하여 쓰기도 하였다. 하지만 하얀 살을 드러낸 자작나무 숲을 걷다보면 자작나무의 유용성 따위는 중요하지 않음을 새삼 느낄 수 있다.

눈부시게 하얀 70만 그루가 채운 고요한 숲길에 서면 땅과 나무, 길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형언할 수 없는 황홀한 관경에 압도당한다. 고개를 들어 파란 하늘에 닿을 듯 솟은 자작나무를 보고 있으면 복잡함은 사라지고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 여유가 생길 것이다.

비우고 다시 채우기 위해 산사(山寺)에 가다

▲ 선암사 전경 ⓒ한국관광공사

"눈물이 나면 기차를 타고 선암사로 가라." 정호승 시인의 <선암사>는 그렇게 시작된다. 풀잎들이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아 줄 것이라는 시의 구절은 힘들었던 지난 시간에 대한 위로가 된다. 정신없이 휘몰아치는 연말을 보내고 있노라면 미처 준비할 틈도 없이 새해가 시작되어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때 산새마저 숨을 죽이는 곳에서 과거의 나를 온전히 비워낼 수 있는 순천 선암사로 가는 건 어떨까?

순천만 습지로 알려진 전라남도 순천을 대표하는 또 다른 곳이 선암사이다. 조계산 자락에 위치한 오래된 절인 선암사는 보물급 문화재를 품고 있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산책로를 따라 걸어 가다보면 아주 오래된 돌다리가 보인다.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승선교는 부드러운 곡선으로 휘어져 있다. 마치 커다란 무지개로 보이기도 하는 승선교는 고통의 세계에서 부처의 세계로 건넌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종교적인 해석을 가져오지 않더라도 겹겹이 쌓인 아치 너머로 보이는 강선루의 처마를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평온하고 차분해지는 느낌이 든다.

잠시 걸어 산사로 들어갔을 뿐인데 선암사 내부는 공기마저 고요하게 가라앉아 있다. 소박해 보이는 석탑과 잎을 다 떨군 앙상한 나뭇가지, 색 바랜 기둥이 단단히 버티고 있는 대웅전까지 무엇 하나 소란스러울 것이 없는 공간이다. 평소보다 몇 배나 느리게 느껴지는 시간 속에 머물다보면 어수선하고 들뜬 마음은 절로 비워진다. 비워야 새 것을 담을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버리지 못한 것들에 지쳐있다면 고즈넉한 선암사에서 비우고 새롭게 시작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

해현경장(解弦更張)이라는 말이 있다. 거문고의 줄을 바꾸어 맨다는 뜻으로 느슨해진 것을 긴장하도록 다시 고칠 때 흔히 쓰이는 고사성어다. 더 맑은 소리를 내기 위해서 거문고의 현을 새로 바꿔야 하듯이 보내는 해에 대한 아쉬움을 떨쳐내야 새로운 날을 맞이할 수 있다. 새해를 맞는 설레임으로 가득한 이 시기에 자연의 품에서 잠시 멈춰서 2020년을 계획해 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