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스토리 전문가들이 들려주는 현장의 이야기

"인가받은 사람이 인가된 곳에만 출입해야 한다"
물리적방호를 실현하는 사람들

한국수력원자력 송재근 비상계획실 부장, KINAC 장성순 물리적방호실장


지난 2007년 11월 남아공의 원자력연구센터 펠린다바(Pelindaba)에 무장한 4명이 전기 철조망과 경보시스템을 뚫고 침투했다. 당시 펠린다바에는 750kg의 고농축우라늄이 보관되어 있었다. 무려 핵무기 25~30기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이었다. 다행히 이 무장괴한들의 침입은 오래가지 못했다. 원자력연구센터를 지키는 방호인력에 의해 체포된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핵물질을 소홀히 관리하면 언제든지 탈취될 수 있다는 무서운 사실을 보여줬다.

원자력 시설에 가해지는 내외부의 위협을 막고 이를 탐지 및 대응하는 물리적방호는 그래서 중요하다. 물리적방호는 외부의 침투를 막아내 원자력 시설의 안전한 운영을 책임지는 한편, 내부 시설에 보관된 핵물질이 탈취돼 핵무기화되는 것을 막는다.

이렇게 원자력시설 테러에 의한 위험에서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물리적방호에 관해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오랫동안 물리적방호 분야에 종사해 온 KINAC 장성순 물리적방호실장과 한국수력원자력 송재근 비상계획실 부장을 만나봤다.

핵안보의 핵심인 물리적방호

▲ 원자력발전소 내외에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하고 복잡한 보안방호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물리적방호는 어느 누구라도 허가 없이 시설에 출입할 수 없도록 한다. c. 한국수력원자력

원자력시설에서 일어날 수 있는 사고는 사람이 원인일 수 있다. 특히 장성순 실장은 "우리나라는 원전 주변에 주거 지역이 넓게 분포되어 있다"라며 "고의든 아니든 외부인의 침투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사고를 막기 위해서 철저한 방호는 필수다"라고 강조했다.

같은 맥락에서 송재근 부장은 원자력시설의 물리적방호 기본은 "인가받은 사람이 인가된 곳에만 출입하게 하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허가받지 않은 사람이 원전에 출입해 일으키는 사고나 무장세력에 의한 시설파괴, 핵물질 탈취가 발생하면 국가와 국민의 안전을 무너뜨릴 정도로 그 파괴력이 크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국수력원자력 비상계획실은 원자력발전소의 방호, 방호범위 설정, 출입통제를 총괄하며 방호 인력의 훈련과 군․경 인력 배치계획까지 맡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앞서 말한 대로 인가받지 않은 사람이 절대로 원자력 시설 내에 들어올 수 없도록 막고, 설사 침입했다 하더라도 주요 시설이나 핵물질에는 절대로 접근하지 못하게 지연하기 위함이다.

KINAC은 원자력 사업자가 이렇게 중요한 물리적방호를 잘 하도록 돕는 조력자 역할을 한다. 장 실장은 "KINAC 같은 규제기관은 사업자가 물리적방호 출입통제, 검색, 대응 감시 등을 잘 이행하고 있는지 심사하고 검사하는 일을 한다"라고 말했다.

KINAC이 실시하는 모든 점검은 심ㆍ검사 기준서를 통해 이뤄진다. 장 실장은 "감시할 때 적합한 CCTV의 화소 수나 설치 높이, 감시 범위 등 세세한 요건까지 심ㆍ검사 기준서에 적혀있다. 기준서는 2013년 처음 만들어진 이후 매년 개정하고 있으며 현재 17종이다. 예전에는 미국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기준을 활용했지만 우리나라 실정에 맞도록 발전해 나가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꾸준한 훈련과 기술 개발로 물리적방호의 수준을 높이다

송 부장은 사업자와 규제기관의 역할 수행을 통해 도달한 우리나라의 물리적방호 수준이 매우 높다고 평가했다. 송 부장은 "누가 시설에 들어오고 나가는지 실시간으로 관리된다"라며 "불시침입에 대비한 반복된 훈련과 검증으로 방호구역별 침투 대응 분석이 매우 자세하고 분초를 다투는 지연 시스템이 마련돼 있다"라고 말했다. 이렇게 높은 방호 수준을 보여주는 한 예가 과거 한빛원자력본부에 일어난 불법이민자 침입 사건이다. 불법이민자들은 원자력시설인 줄 모르고 시설 근처에 들어왔고 곧바로 체포됐다. 이때 반복된 훈련의 성과로 방호 인력이 매우 기민하게 움직였고 상황은 몇 분 내 원전 전체에 전달됐으며 체포까지 수 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해프닝이었지만 비상계획실은 빠른 대처와 성공적인 방호를 인정받아 표창장까지 받았다.

▲ KINAC과 한수원은 더 발전된 물리적방호를 위해 각각의 역할을 하며 긴밀히 협조하고 있다.

장 실장은 우리나라의 물리적방호 수준이 세계적으로도 높은 수준이라고 평했다. "원전에 군부대가 주둔해 있는 국가는 얼마 되지 않는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물리적방호를 위한 체계적 절차가 잘 갖춰져 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쉬운 부분을 언급했다. "이렇게 하드웨어는 좋은데 소프트웨어는 조금 부족하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소프트웨어란 사람들의 핵안보 인식을 말한다. 물리적방호가 중요하며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을 사업자와 국민들이 더 깊게 이해했으면 좋겠다."

송 부장도 물리적방호의 필요성에 대해 더 잘 알아야 한다는 데 동의했다. "원자력 시설 종사자들이 물리적방호 교육을 받기는 하지만 그 형식과 내용이 조금 아쉽다"라며 " KINAC 같은 규제기관이 방호 인력뿐만 아니라 일반관리자를 포괄하는 현장 실무 교육을 더 풍부하게 제공했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송 부장은 비상계획실에서는 일정 시기에 하는 정규훈련뿐만 아니라 수시로 훈련을 실시하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원자력시설의 정문을 얼마나 빨리 막을 수 있는가, 정문을 돌파 강습했을 때 그 다음 진행을 얼마나 지연시킬 수 있는가 등 기동타격 훈련과 위험상황 탐지 훈련은 일상이나 다름없다고 한다. 또한 "훈련 외에도 최신 보안방호 지식을 얻기 위해서 보안박람회, 엑스포에 참여하고 있고 원자력안전위원회, KINAC과 화상회의를 하면서 정보공유와 취약점 분석을 하고 있다고 말했다.

KINAC도 새로운 침투기술이 늘어남에 따라 자체적으로 기술 개발과 연구를 꾸준히 하고 있다. 장 실장은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원자력 시설의 취약성을 평가하는 소프트웨어를 개발하고 있다. 그 외 훈련 평가 시스템 개선도 진행 중이며 드론 방호, 위조 인증수단 파악, 폭발물, 내부자 위협 등에 대한 신기술 연구를 정부에 제안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게다가 실제 상황과 동일하게 훈련이 가능한 마일즈 장비(MILES)를 개발해 활용하고 있어 비상시 대응능력을 효과적으로 키울 수 있다고 밝혔다 또한 핵안보교육시험시설(SETT)를 통해 방호 설비 및 장비를 연구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격려를

▲ 오랫동안 보안방호 분야에 몸담아온 송 부장은 보안방호 종사자들의 숨은 노력에 대해 격려받을 때 자부심이 생긴다고 말했다.

물리적방호 관련 법령 신설에 참여하는 등 20여 년을 보안방호 분야에 바친 사람으로서 송 부장의 회고는 남달랐다. "사실 보안방호 분야는 상당히 힘들고 외로운 일이다. 무엇보다 바깥에 드러나지 않는 묵묵한 분야이기 때문이다. 안전이 잘 지켜질 때는 사람들 눈에 띄지 않지만 안전이 깨졌을 때는 보안방호 분야 종사자들에게 비판이 쏟아진다. 그렇기에 보안방호 분야 종사자에게는 이 일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는 자부심이 필요하다. 자부심을 잘 기를 수 있도록 지금처럼 KINAC에서 많은 격려와 관심을 보여줬으면 좋겠다."

장 실장도 2006년 12월 입사 때부터 물리적방호만 담당한 베테랑이다. "물리적방호는 어려운 분야이지만 필요하고 의미 있는 일이기 때문에 반드시 해야 한다"라며 소명의식을 보였다. 그러면서 스스로 연구한 사례가 표준이 되어 원자력 시설뿐만 아니라 다양한 국가보안시설 전반에 활용됐다며 뿌듯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원전의 물리적방호를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송 부장은 사업자와 규제기관간의 긴밀한 의사소통이 중요하다고 꼬집었다. 특히 원자력방호체계에 대한 정책을 수립할 때 현장에 대한 이해가 깊은 사업자가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고민이 많이 필요한 정책을 세울 때는 심도 깊은 공청회를 열어 문제를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 한 번 모여서 끝나는 회의가 아니라 2차, 3차까지 이어져 사업자의 의견이 실질적으로 정책에 반영되는 공청회가 되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송 부장은 "우리나라도 이제 테러나 원자력 사고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며 "보안 관련 규칙을 잘 지키고, 이런 의식이 큰 위험으로 번지지 않게 작은 위험을 예방한다는 핵안보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라고 말했다. 물리적방호의 기초는 규칙 준수에 있다. 규칙은 자발적으로 이해하고 지킬 때 더 효과적이다. 물리적방호를 이행하는 사람들은 바로 이 규칙을 정착시키기 위해 노력한 사람들이다.이들이 만들어 온 핵안보 문화가 정착되고 더욱 발전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