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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NAC, 아시아 지역의 핵안보 고민 모으다
A/CPPNM 평가를 위한 아시아 지역 핵안보 국제 워크숍 개최

1970년대 말 이후 원자력 산업이 세계 각국에서 성장하면서, 국제적으로 핵물질 운송이 빈번해 졌다. 이에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주도 아래 핵물질의 물리적방호에 관한 국제 규범이 발효되고, 2016년 5월에는 개정 핵물질방호협약(A/CPPNM)이 발효되어 기존 협약의 물리적방호 범위를 국가 간 운반 중인 핵물질에서 국가 내 핵물질 및 원자력 시설까지로 확대하였다. A/CPPNM 발효 5주년을 맞아 평가회의에 앞서 2021년 3월 아시아지역 핵안보를 논의하는 워크숍이 개최됐다.
오는 2022년에는 A/CPPNM 발효 5주년을 맞아 130여 개 협약 당사국이 모인 제1차 평가회의가 열린다. 이에 앞서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KINAC)·원자력안전위원회(이하 원안위)·외교부는 3월 23일과 24일 양일간 아시아지역 핵안보 워크숍을 개최하여 지역내 핵안보 과제 및 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핵안보 현안 지원을 위한 국제 협력
이번 워크숍은 지난해 6월 열린 국제원자력기구(IAEA)와 우리 외교부 간 회의에서 제안되었고 사전 설문 조사부터 워크숍 프로그램 구성까지 긴밀한 협력 속에 기획됐다. 개정 핵물질방호협약(A/CPPNM)의 이행과 타당성을 검토하는 2022년 최초 평가회의에 앞서 지역별로, 특히 아시아 지역에서 직면해 있는 핵안보 위협과 대응 현황을 파악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였다.

박일 외교부 원자력·비확산외교기획관은 "지난 몇 년간 국제 핵안보에 진전이 있었으나 아직 위협이 잔존할 뿐 아니라 진화하고 있다"며 핵물질의 물리적방호에 관해 법적 구속력을 가진 개정 핵물질방호협약(A/CPPNM)을 준수하고 국제 협력을 강화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한국은 신남방정책의 차원에서 아시아 지역 국가들과 더욱 적극적으로 협력할 것임을 강조했다.
이번 워크숍에는 이러한 문제의식을 사전에 공유한 중국·일본·베트남·말레이시아·필리핀·태국·싱가포르 등 아시아 9개국과 미국, 호주, IAEA에서 45명의 전문가가 참석했다. 첫째 날에는 핵안보 대응을 위한 국제 사회의 노력과 아시아 지역의 핵안보 위협과 대응 노력을 주제로 논의하고 둘째 날에는 운송 방호와 핵감식이라는 지역 현안을 두고 구체적인 위협 요인과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핵안보 대응을 위한 국제 사회의 노력과 역할' 세션에서는 IAEA와 미 핵안보국(DOE/NNSA)의 핵안보 지원 활동에 관한 소개가 이뤄졌다. IAEA 백유미 전문관은 각국이 스스로 지속가능한 핵안보 체제를 구축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으로서 IAEA 통합핵안보지원계획(Integrated Nuclear Security Support Plans, INSSP)을 소개했다. 지원 범위는 관련 법 및 규제체계, 위협 및 리스크 평가, 물리적방호 제도, 탐지, 대응, 핵안보 체제 유지를 포함하며 각 국에 적합한 조언을 제공한다. 이러한 활동의 연장선에서, 백 전문관은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회원국을 대상으로 하는 핵안보 교육을 기획 중이라며 아시아 국가들의 관심을 촉구했다.
핵물질보안 전문가 브래드 해밋은 핵물질 및 방사성 물질이 악용되지 않도록 국제 안보를 강화하고 핵 밀수를 탐지하는 데 NNSA의 역량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하며, 이미 많은 ASEAN 국가가 NNSA와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기술적 전문성과 정보를 교류함으로써, 아시아 각국은 핵물질 및 방사성 물질 도난 상황에 자체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아시아 회원국 핵안보 인식, 원전 유무 따라 차이 보여
이어진 세션 '지역의 핵안보 위협과 대응 노력'에서는 장성순 KINAC 물리적방호실장이 한국의 핵안보 우선순위가 구축된 역사적 맥락을 소개했다. 장 실장은 한국 정부가 미국의 9.11 테러와 같은 중대한 사건을 통해 물리적방호에 대한 위협 상황 및 그에 대한 대처를 강화해 왔다고 설명하며 핵안보 관련 입법 체계와 규제 시스템을 세우는 데 유관기관 및 국제 사회와의 협력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번 워크숍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내용은 아시아 각국의 핵안보 인식이었다. KINAC 대외협력팀은 아시아내 국가별 핵안보 위협 현황 및 인식에 관한 설문 조사를 기획, 9개 국가의 회신 내용을 분석하여 그 결과를 공유했다. 응답국들은 주요 안보 이슈로 대량살상무기(21%), 테러(16%), 핵안보 위협(16%)를 꼽았다. 전염병, 사이버 공격, 무인 항공기 등 다른 위협 요인보다 핵안보에 대한 우려가 상대적으로 크게 나타난 것이다.

신동훈 KINAC 교육훈련센터장은 같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이라 하더라도 핵안보에 관한 인식은 국가별로 차이가 있을 수 있음을 지적했다. 이어 정진호 대외협력팀장은 "설문 조사 결과 아시아 국가의 핵안보 인식은 매우 광범위하고 다양했으나, 원자력 시설의 보유 여부에 따라 차이를 보인다"라고 전했다.
모든 응답국이 기본적으로 핵물질 도난 및 탈취에 대한 우려를 표하는 한편, 국가 차원에서 강조하는 핵안보 이슈는 상업용 원전 보유 여부에 따라 달라진 것이다. 원자력 시설을 보유한 국가는 시설에 대한 사보타주 방어, 핵물질 도난 및 밀수에 대한 예방과 대응, 사이버보안 대응을 주요 핵안보 이슈로 꼽았으나 원자력 시설이 없는 국가는 도난 및 밀수, 방사능 테러 대응, 수송 중 방사성 물질 안보 순으로 핵안보 우선순위를 부여했다. 이러한 차이는 향후 관심을 기울여야 할 핵안보 이슈에 대한 인식에서도 드러났다. 원자력 시설 미보유국은 도난 및 밀수, 사이버보안, 공공장소에서의 방사능 테러, 국내 운송 보안을 강조했으나 원자력 시설을 운영하는 국가들은 내부자 위협에 관해 상대적으로 높은 관심을 보였다. 여러 차이에도 불구하고 응답국들은 공통적으로 핵물질 및 방사성 물질의 운송 보안을 높이기 위한 시스템 개선의 필요성, 핵•방사성 물질 탈취 및 불법 거래 대응 방법에 큰 관심을 보였다. 1일차 발표를 통해 사전 설문 조사 결과를 공유받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문가들은 2일차 패널 회의에서 운송 방호·핵감식 등 주요 현안에 대한 각국 상황을 공유했다. 이번 설문 조사 결과와 아시아 각국 전문가의 패널 토론 발언은 추가적인 논의와 검토를 거쳐 A/CPPNM 평가회의에 제출할 문서의 기초 자료로 활용될 예정이다.

이어진 지역 이슈 세션에서는 운송 방호와 핵감식을 심층적으로 다루었다. 이 두 주제는 사전 설문 조사 결과 다수의 국가가 높은 관심을 표한 것으로, 각국의 참가자들은 아시아 지역 핵안보 현안 공유 필요성에 공감하고 자국의 지식과 경험을 적극적으로 나눴다. 운송 방호에 있어 참가자들은 관련 제도를 개선하거나 지리적으로 가까운 국가끼리 협력을 강화하는 등 방법 측면에서 개선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핵감식 주제 토론에서는 국가마다 실무 수준의 핵감식 기술 격차가 있음을 확인하고, 이러한 차이를 해소하기 위해 지역 협력을 촉진해야 한다는 중지를 모았다.
KINAC은 이번 워크숍의 주관기관으로서 ASEAN 국가의 핵감식 역량을 보다 구체적으로 파악하는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 핵안보 공조를 위한 KINAC 및 유관기관들의 노력은 아시아 지역의 핵안보 국제 협력을 더욱 공고히 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