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NAC INSIDE 국제 핵비확산ㆍ핵안보 선도 전문기관, KINAC의 활동

원자력 규제를 수출하다

원전 수출과 KINAC의 원전 규제기술 지원

▲ 바라카 원전 1호기 완공식. 이를 계기로 한국은 3세대 원전을 성공적으로 수출한 국가가 됐다. © 청와대


지난 2018년 3월 26일, 중동으로부터 희소식이 들려왔다. 우리나라가 아랍에미리트(이하 UAE)에 수출한 바라카 원전 중 1호기가 공식적으로 완공된 것이다. 이날 열린 기념행사에는 UAE를 공식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과 모하메드 빈 자이드 알 나흐얀 아부다비 왕세제가 함께 참석했다. 두 정상은 바라카 원전 완공을 축하하는 데 그치지 않고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선언하며 향후 사우디아라비아 원전 수주전에서도 협력할 것을 약속했다.

▲ 세계적으로 3세대 원전 수출건이 시공에 난항을 겪고 있다. 그림은 미츠비시 중공업이 터키에 건설중인 시노프 원전의 조감도로, 시노프 원전은 계획 단계에서 예정된 공사비와 공기를 맞출 수 없을 것으로 드러나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 MHI

바라카 원전 완공은 한국의 수출 산업에 매우 큰 의미를 지닌다. 2009년 우리나라가 UAE에 원전을 수출한 이후, 일본과 중국도 원전 수주전에 뛰어들어 베트남, 터키 등지에서 원전을 건설하게 되었다.

그러나 세계 곳곳에 건설중인 3세대 원전 중 계획에 따라 차질없이 건설된 원전은 현재 바라카 원전이 유일하다. 이번 완공으로 우리나라는 원전 시공능력과 함께 사업관리 역량도 입증한 셈이다. 원전 수출에 대해서는 정부 차원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하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선언 역시 국내 산업계 입장에서는 고무적인 소식이다.

원전 수출의 또 다른 핵심, 시스템

원전과 같은 대규모 산업시설은 제품을 수출했다고 끝이 아니다. 시공부터 운전까지 전반적인 운영과 이에 따른 제반 관리업무도 함께 수행해야 한다. 원전과 같은 복잡한 시스템을 운영하려면 전문인력이 많이 필요한데, 이들 인력을 새로 교육, 훈련하는 데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소요돼서 운영과 관리까지 위탁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대부분의 발전소 수출 계약은 수출국가가 직접 자금을 조달해서 건설하는 대신 일정 기간 발전소의 운영권과 운영수익을 보장받는 형태다. 요컨대, 원전 수출은 기술이나 제품 수출이 아니라 '시스템과 제도 전반'을 수출하는 것인 셈이다.

이 '시스템과 제도 전반' 중 잘 드러나지 않는 핵심 요소가 있다. 바로 원전을 건설하고 운영할 때 반드시 준수해야 하는 '규제'와 관련된 기술과 정책이다. 원전에 사용되는 핵연료는 사용 전이나 후에 반드시 엄격하고 철저한 관리가 필요하다. 잘못 관리될 경우 고준위 방사성 물질이 환경 피해를 유발할 수도 있고, 무기로 전용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원전 수출국은 수입국에게 규제 노하우도 전수해야 한다.

원자력 규제는 어느 한 국가만의 책임이 아니다. 원전을 운영하려면 필연적으로 연료인 핵물질을 다뤄야 한다. 이를 운반하고 사용하는 과정에서 핵무기로 전용되지 않도록 하는 핵비확산의 차원에서 규제 또한 매우 중요하다. 수출 과정에서 핵물질이나 전략물자를 보내는 쪽과 받는 쪽, 양쪽에서 빈틈없이 관리해야만 원자력 규제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

한편 우리나라는 원전을 운영하며 자체적인 노형까지 개발한 원전 선진국이다. 또한 원전 수출국으로서 원자력 후발주자와 수입국에 원자력 운영 및 규제 노하우를 전수하고 인프라 구축을 지원하고자 하였다. 이는 마치 선진공업국이 저개발국에 경제성장의 노하우를 전수하고 경험을 공유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원자력을 평화적으로 안전하게 활용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과정이다.

▲ UAE 원전 건설 관련 수출 개념도. 원전 수출에는 물품, 기술에 대한 수출허가 등 규제시스템적 요소도 반드시 수반돼야 한다.



원전 수출의 숨은 과제, 수출입통제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KINAC)은 핵비확산·핵안보 전문기관으로서 우리나라가 원전을 수출한 UAE와 요르단에 수출입통제 관련 기술을 지원해 왔다. 하지만 이에 앞서, 수출입통제 측면에서 국내 원전을 운영할 때와는 또 다른 문제를 사전에 해결해야 했다. UAE 원전 사업은 우리나라 최초의 수출 사례였기 때문이다.

가장 큰 문제는 수출에 따라 '전략물자'로 분류되는 다품종, 다량의 물품과 기술이 한꺼번에 이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존의 수출입통제는 원전의 일부 부품을 수출하거나 특정 분야의 기술이전, 핵연료 수출입에 수반되는 것이 대부분이라 대상품목의 종류와 수량이 적었다. 그러나 원전을 수출하면서 대규모의 물자와 기술 이동이 일어나, 기존의 시스템으로는 규제기관과 수출입자의 행정부담이 커지게 됐다. 이처럼 많은 물자 및 기술 이동을 한꺼번에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이나 원전의 모든 계통에 대한 세부적인 심사지침이 부족하다는 점도 시급히 해결할 과제였다.

한편으로는 한국인뿐 아니라 제3국 국적의 전문인력들이 원전 건설 현장에 대거 참여한다는 것도 문제였다. 바라카 원전 현장에는 한국인과 UAE 사람들뿐 아니라 미국, 체코 등 여러 국적인 인력들이 함께 모여 일하고 있었다. 수출입 당사자는 아니지만, 건설 현장에서 기술검증, 자문 등의 목적으로 제3국 기관이 개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들과의 협력 과정에서 기술자료가 이전되는 경우가 있으므로 이에 대한 통제도 필요하다.

이에 KINAC은 기존의 개별 물품 및 기술에 대해 수출을 허가하던 방식을 수출품목 전반에 대해 패키지 형태로 허가할 수 있도록 일괄수출허가제도로 개선해 행정부담을 줄였다. 원래는 개별 기술과 품목에 대해 건건이 정부보증을 필요로 했지만 UAE 사업에 대해서는 통합적으로 정부보증을 수령하고 처리하도록 한 것이다. 또한 대량의 전략물자 심사를 빠르게 처리하기 위해 인공지능(AI) 기반의 심사지원 시스템을 개발해 2017년도 8월부터 심사에 적용했다. 또한 기존의 수출입 관련 시스템 NEPS와 YesTrade를 통합해 '프로젝트 수출관리 시스템'으로 일원화함으로써 전략물자 수출입 업무의 편의성을 높였다. 또한 원자력 수출통제를 주관하는 KINAC의 심사인력을 충원하고 외부 전문가 자문단 운영 등을 통해 전문성을 강화하였으며 사전판정 심사지침서를 수립하여 세부적이고 명확한 심사 결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 인공지능(AI) 기반의 수출통제 심사ㆍ식별 시스템


이와 함께 제3국 전문인력을 통해 전략물자와 기술이 확산되지 않도록 통제정책을 새로이 마련했다. 다만 UAE의 최초 원전이라는 특성상 초기, 중기, 말기로 나누어 단계적으로 수출입 통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공사 초기에는 별도의 열람실을 두어 자료의 유출을 제한하고, UAE에 대한 기술이전 및 교육이 이루어지는 중기에는 UAE의 규제기관이나 사업소와 비밀보안서약서(NDA) 체결 여부에 따라 자료 접근권한을 달리하였다. UAE에 수출입 통제 프로세스가 정립된 마지막 단계에서는 UAE와의 협정이 있거나 법적인 테두리 내에서의 활동인 경우 재이전 통제 의무를 경감함으로써 업무가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그간의 핵비확산ㆍ핵안보 규제기술 지원

KINAC은 이처럼 국내 수출입통제 시스템을 정비하여 활성화하는 한편으로, UAE에 대한 규제기술 지원을 추진했다. 규제기술 지원을 위한 첫 회의는 2010년 11월의 기술협력회의로, 안전조치와 수출입통제 분야가 중점적으로 논의됐다. 구체적으로는 원자력 프로그램 도입에 필요한 법적 근거를 마련하고 원전 건설과 운영시 반드시 필요한 국제원자력기구(IAEA) 보고 체계 구축을 다루었다. 이러한 사항은 원전 건설에 필요한 자재를 수입하는 데 반드시 전제돼야 하는 절차였기에 본 사업에 앞서 우선적으로 진행된 것이다. 이어 이듬해 11월부터는 연례회의를 개최하였다. 제1차 연례회의에서는 수출입통제와 관련된 사항과 소량 핵물질 관리에 관한 사항부터 논의하였다.

공사 진척에 발맞춰서 2013년 개최된 제3차 연례회의부터는 물리적 방호 분야에 대한 규제기술 지원이 이뤄지기 시작했다. 물리적 방호는 설계와 시공 단계에 반영돼야 하기 때문에 공사 초기에 회의가 이루어진 것이다. 이어 2014년 원자로 설치 후에는 원자력수출통제종합관리시스템과 사이버보안 등 완공 후 운영과 관련된 논의로 이어졌다. 2015년의 제5차 연례회의부터는 본격적인 규제기술 교육훈련 방안이 핵심 의제로 다뤄졌다. 이전 회의에서도 안전조치나 물리적 방호 분야에서 단편적인 교육 요구가 있었으나 연례회의를 기점으로 교육훈련을 통한 규제기술 지원이 본격적으로 추진된 것이다.

2017년부터는 바라카 원전에 사용될 연료 운반이 시작됨에 따라 핵물질 재고량 변동 관리 등 본격적인 운영 단계에 대한 지원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2017년도 연례회의에서는 안전조치, 수출입통제, 물리적방호, 사이버보안을 비롯해 교육훈련까지 전반적인 논의를 진행했다.

원전수출시대, 평화적 이용을 위한 규제기술 협력

이번 완공을 계기로 향후 바라카 원전사업은 운전단계로 전환을 앞두고 있다. 이후 핵물질에 대한 규제도 운영원전 대상 규제로 변화하게 된다. 건설시 필요한 규제와 운영시 필요한 규제는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UAE에서는 이전보다 실질적이고 세부적인 규제기술 지원을 요청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편 UAE와 함께 요르단에 수출한 연구용 원자로도 본격적인 운전단계에 돌입함에 따라 요르단과의 규제기술 협력의 범위와 깊이도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향후 UAE에 이어 사우디아라비아의 원전 사업에 참여한다면 중동 지역에서 규제기술 이전과 교육훈련 등 다양한 협력이 더 활발하게 추진될 것이다.

국가 운전중
원자로
건설중
원자로
계획 확정
원자로
계획 논의중
원자로
기수 총 발전
용량(MW)
기수 총 발전
용량(MW)
기수 총 발전
용량(MW)
기수 총 발전
용량(MW)
사우디아라비아 0 0 0 0 0 0 16 17,000
아랍에미리트 0 0 4 5,600 0 0 10 14,400
아르메니아 1 376 0 0 1 1,060 0 0
요르단 0 0 0 0 2 2,000 0 0
이란 1 915 0 0 4 2,200 7 6,300
이스라엘 0 0 0 0 0 0 1 1,200
이집트 0 0 0 0 2 2,400 2 2,400
카자흐스탄 0 0 0 0 0 0 3 1,800
터키 0 0 1 1,200 3 3,600 8 9,500

▲ 중동지역 및 인근 국가들의 원자력발전소 현황 (2018년 4월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