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스토리 KINAC 사람들, 그들이 들려주는 현장의 이야기

"사무실 보다는 현장이 더 좋다"는 현장 체질 안전조치 베테랑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 안전조치실 안승호 실장

'원자력을 안전하게 사용한다'는 의미에는 시설의 안전뿐만 아니라 군사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뜻도 담겨있다. 핵무기로 전용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의미다. 그러기에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원자력을 사용하는 국가들을 사찰하고 국제규제물질을 정해 규제와 감시를 시행한다. 국내에서는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KINAC)의 안전조치실이 안전조치협정과 원자력 협력 협정에 정의된 의무사항의 이행을 위한 업무를 정부에서 위탁받아 수행하고 있다.

생소한 안전조치 업무 내용을 자세히 들어보기 위해 안전조치실의 안승호 실장을 직접 찾았다. 안 실장은 KINAC의 전신인 한국원자력연구소 내 원자력통제기술센터(TCNC) 시절부터 관련 업무에 몸담았다. 2003년부터 지금까지 잠깐의 외유를 제외하고는 총 14년가량을 안전조치 업무에 매진한 베테랑이다.

IAEA와 함께 기술지원, 감독업무 수행

핵물질이나 관련 장비가 무기로 전용되지 않도록 하는 수단이나 조치는 매우 다양하다. 그중 IAEA의 직접 사찰이 가장 기본이다. 따라서 KINAC은 원자력안전법에 따라 IAEA 사찰관과 동행하여 기술지원과 감독업무를 한다. 또한 IAEA 회원국으로서 우리나라의 핵물질을 관리하고 IAEA에 보고한다. 또한 국가간 원자력협정이 체결된 미국, 호주, 캐나다 등과 주고받은 핵물질의 양과 협정 폼목을 문서로 상호 확인한다. 이러한 국제적인 의무 이행과 더불어 국가 검사를 수행하는 것이 안전조치실의 주된 업무다.

안 실장은 "안전조치실의 업무는 국제적 관계나 정책의 기조, 흐름에 대해 파악하고 관련 제도에 대한 이해력이 중요하다"라고 설명한다. 협정이나 합의 내용을 이행하는 조직이기 때문이다.

안 실장이 느끼기에는 초기보다 지금의 우리나라 안전조치 수준이 훨씬 높아졌다. 우리나라가 2015년 9월부터 국가수준 안전조치 접근법(SLA)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SLA는 2014년 IAEA가 국가별로 다른 원자력 시설 현황에 맞춰 효율적인 안전조치 이행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다. 우리나라가 이를 채택하면서 △경수로 운전 중 물자 재고검증 사찰과 △경수로 연료 재장전 시 실시하던 설계정보검증 사찰이 면제됐다. 한국원자력연구원 내의 연구용원자로 '하나로'에 대해서는 원격감시를 적용하고 파이로연구 시설을 별도 분류해 관리함으로써 효율적인 사찰을 할 수 있게 됐다. 안 실장은 "그만큼 우리나라 원자력 시설의 안전조치 체계를 인정받고 원자력 통제 분야의 신뢰도가 상승했다는 증거"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우리나라는 IAEA 회원국 중 선도적으로 SLA를 적용한 국가로 꼽힌다.

첫 아이 얼굴도 제대로 보기 힘들었던 초기 시절

한 부서의 실장이 된지 3년이 되어 가지만 아직도 사무실 보다는 현장 쪽이 적성에 더 맞는다는 안승호 실장. 실제 입사 초기에는 끊임없는 출장이 피곤하다기보다 오히려 좋았다고 했다. 하지만 2006년에는 연 200일 가량 외부 출장을 나가 당시 갓 태어난 아이의 얼굴을 제대로 보기도 힘들 정도였다. "한때는 아이가 아빠의 얼굴을 알아보지 못해 실망감이 컸다"라고 말할 정도다. 안전조치실의 업무는 이처럼 외부 출장이 많다. 지금도 연 50일 정도는 출장을 나간다. 요즘은 사무실에 오래 있다 보니 좀이 쑤신다는 그다.

IAEA 무통보 사찰이 시작된 후에는 언제 갑자기 출장을 가야 할지 모른다. 우리나라는 지난 2014년 4월 경수로 무통보사찰을 시범시행하고 2016년 5월 본격 시행했다. 무통보 사찰은 IAEA가 국가 및 시설에 대한 사전 통보 없이 사찰을 개시하는 것으로 사찰을 받는 국가는 사찰관이 해당 시설에 도착한 시점부터 2시간 이내에 핵물질을 직접 확인할 수 있는 전략지점에 접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출근해 보니 IAEA 사찰이 나왔다고 통지를 받아 바로 현장으로 날아가야 하는 상황이 발생한다. 안 실장은 "현장에서 IAEA 사찰관과 함께 사찰을 진행하면서도 사찰받는 시설의 상황을 고려해야 하니 중간자적 역할로서 소통 능력의 중요성을 매번 절감한다"라고 전했다.

무통보사찰로 안전조치 업무에 과중함만 부가된 것은 아니다. 무통보 사찰은 대외적으로 가장 높은 핵투명성이 요구되는 사찰방법 중 하나다. 즉 우리나라는 무통보사찰 도입을 통해 핵비확산에 대한 강한 의지를 천명하고 국제사회 핵비확산 선도국으로 각인한 셈이 된다. 또한 무통보사찰 도입에 따라 IAEA의 기술방문 횟수가 2014년 대비 85%나 감소('14년 45회→'16년 3회)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덕분에 안전조치실도 사찰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할 수 있게 되어 독립적인 '특정핵물질 계량관리 국가 검사'가 도입되고 SLA가 적용되는 등 국가적 신뢰도를 높일 수 있었다.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저장시설 문제 해결에는 큰 보람도 느껴

안전조치실은 국내 여러 가지 안전조치에 관한 사안을 IAEA와 협의해 해결하는 기능도 수행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바로 핵연료 가공시설에서 발생한 폐기물을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저장시설로 이송하기 위한 '우라늄 폐기물 및 처분시설에 대한 안전조치 접근법'을 수립한 사례다.

한전원자력연료(주)와 대전시는 2017년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저장시설 처분 계획을 세우고 우라늄 폐기물 이송계획을 수립했다. 하지만 기존 IAEA 안전조치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 이송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 발생했다. 안 실장은 "경주의 방사성폐기물 저장시설은 지하 130m 내 폐기물 드럼을 보관하고 밀폐하는 형태다. 일단 우라늄 폐기물이 지하에 들어가면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지는 거다. 당시에는 그런 물질에 대해서는 사찰, 검증 방법이 전혀 없었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지난해 초 한-IAEA 안전조치협력회의에서 공식적으로 논의를 시작했다. 폐기물 내 우라늄 양 계량방법 평가, 폐기물에 대한 안전조치 종료 방안 수립 등을 통해 중·저준위방사성폐기물저장시설을 안전조치 적용 시설로 편입하고 관련 규정을 승인받았다. 이어 한전원자력연료(주)의 시멘트 고화된 우라늄 폐기물의 농축도 측정을 통해 기존 신고된 데이터와 일치성을 확인하고 측정 결과를 토대로 IAEA 내부 기준 충족된다는 결과를 도출하였다. 그 결과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저장시설로 이송하고 IAEA의 안전조치 의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어렵게 해결한 만큼 이에 대해 보람도 컸다는 것이 안 실장의 설명이다. "국제 사찰 및 국가검사에 대한 공감도가 낮은데, 핵비확산의 중요성보다 업무적인 부담이 크게 다가오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번 건으로 국제적인 룰을 지키면서도 우리나라 사업자에게 도움이 된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어 뿌듯하다"라고 밝혔다.

이어 "지난 2015년도에 개편한 국가검사제도나 규제 체제에 대한 정비가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면서 "올해는 규제기술문서 미비점을 보완하여 규제체계가 정착될 수 있도록 노력할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개인적인 욕심으로는 운동도 열심히 하고 살도 빼서 건강하게 살고 싶다는 바람도 이야기했다. 2015년 실장으로 발령받은 이후 가지 못했던 가족여행도 올해는 꼭 다시 가겠다는 소소한 희망도 원자력 규제체계 정착이라는 목표와 함께 꼭 이루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