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핵물질 라이브러리의 현재와 미래를 논하다
제2차 KINAC-SIPRI 워크숍

핵감식은 방사능테러에 이용되거나 도난·분실된 핵물질을 물리화학적으로 분석해 그 이력과 출처를 확인하는 일련의 절차를 말한다. 핵물질 밀거래나 도난 사건은 어쩌다 일어나는 드문 사건이 아니다. 1993년부터 2009년 말까지 전 세계에서 1773건에 이르는 방사성물질의 분실 또는 도난 건이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구축하고 있는 사고 및 밀거래 데이터베이스(ITDB)에 등록되었다. 그런데 핵물질이 국경에서 발각되는 비율보다는 국가 내부적으로 발각되는 비율이 더욱 높다. 최근 몰도바에서는 알루미늄 호일로 포장한 우라늄의 판매 현장이 적발되었으며, 사건이 많이 발생하는 구소련 지역이 아니라 호주에서도 인가받지 않은 동위원소 취급 시설이 발견된 사례가 있다. 이스라엘과 독일 등 원자력 시설의 관리가 철저한 국가에서도 유사사례가 발생한 바 있어 철저한 핵감식 체제 구축의 필요성이 나날이 증가하고 있다.

▲ 호주나 크로아티아에서 발견된것과 같은 우라늄 정광. 우라늄정광은 우라늄 광석 가공 과정의 중간에 생성되는데 옐로케이크로 불리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갈색이나 검은색을 띈다. 옐로라는 이름은 초기의 공정에서 얻어진 농축물의 색깔에서 따 온 이름이다.
사진 출처 : wikipedia.org
특정 국가들만 핵감식 체제를 구축하면 규제에 허점이 생기므로 전세계적으로 핵감식 공조 체제를 동시에 구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이 때, 시료 채취와 분석 뿐 아니라 분석결과를 대조할 국가 핵감식 라이브러리(NNFL), 즉, 인허가 시설 내에서 규제를 받고 있는 핵물질의 정보 데이터베이스의 구축이 필수적으로 선행해야 한다.
KINAC은 여러 국가의 NNFL 구축 현황과 최적관행을 파악하고 향후 전망을 논의하고자 국제 워크숍을 개최했다. KINAC은 6월 13일부터 양일간 스톡홀름 국제평화연구소(SIPRI)와 제2차 KINAC-SIPRI 세미나를 개최 했으며 앞서 언급한 국가 핵물질 라이브러리에 관한 이슈를 더 심도 있게 발제하고 토론했다. SIPRI는 1966년 설립된 독립연구기관으로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안보 문제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으며, 정책과 기술의 균형이라는 주제를 주로 연구하고 있다. KINAC은 2016년에 SIPRI와 양해각서(MOU)를 맺고, 핵비확산 및 핵안보 정책 개발과 연구 협력에 관한 공동 세미나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이번 워크숍에는 KINAC의 최관규 정책연구센터장과 기술개발실의 서하나 선임연구원, 윤종호 선임연구원이 참석했다.
이번 세미나는 핵안보의 필수 요소인 핵감식 체계를 구축하고자 각국이 마련한 NNFL 구축을 위한 기술 수준을 상호 비교하는 자리였다. 국가 핵감식 라이브러리(NNFL) 구축 계획이 없는 핀란드나 노르웨이도 참여하였으며, 연구실 단위의 라이브러리를 구축한 루마니아도 참석하였다. 한국은 그간의 핵밀수 또는 테러 대응 훈련에서 얻어진 경험을 바탕으로 국가 핵감식 라이브러리의 필요성을 발표하였다. 루마니아는 원자력 전문가가 아닌 현직 검사가 불법핵물질의 취급자를 적발해 기소한 사례를 설명하며, NNFL이 핵물질을 누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탈취했는지 설명할 수 있는 좋은 도구임을 강조하였다.

▲ 국가 핵감식 라이브러리 구조
NNFL을 이미 구축한 미국과 헝가리, 우크라이나 등은 각 국가별로 핵주기와 원자력시설의 운영 주체를 고려한 NNFL 현황을 발표하였다. 한국, 헝가리, 우크라이나, 아르메니아는 중앙집중식 NNFL을 구축하고 있으나, 미국은 연계식 NNFL을 구축하여 큰 차이를 보였다. 핀란드나 노르웨이는 별도의 NNFL을 구축하지는 않았으나, 계량관리 정보와 인허가 정보를 포함하는 IAEA 데이터베이스가 NNFL의 역할을 대신할 것으로 기대된다. 우크라이나, 아르메니아 역시 계량관리 정보를 바탕으로 NNFL을 구축하였다. 그러나 계량관리 정보는 우라늄의 보유량에 초점이 맞춰져 있어, 핵물질을 식별하는 데 한계가 있다. 이로 인해 한국은 미국, 스웨덴, 헝가리와 함께 불순물 정보를 함께 포함하도록 NNFL을 설계하였다고 발표하였다.
이 같은 불순물의 정보는 수십 개에 달하여 미지의 불법핵물질 분석결과와 대조할 때 그 값의 신뢰도가 매우 중요하다. 동 세미나에 참석한 전문가들은 신뢰도를 확보하기 위한 수단으로 분석연구소 네트워크의 구성이 중요함에 공감하면서도, 상이한 결과값이 나왔을 때를 대비한 대응 방안에 대해서는 추가 논의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루마니아와 같이 개별 연구소가 보유 핵물질을 목록화하여 저장한 데이터베이스는 NNFL이 아니지만, 불법핵물질이 발견되었을 때 활용 가능함을 확인하였다. 또한 유럽연합의 공동연구센터(EC-JRC)는 러시아와 함께 저농축 우라늄, 혼합 산화물 연료의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여 NNFL의 전신으로써의 역할을 수행한 결과를 발표하였다. 이 때, 보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한되지 않은 정보는 보안서약서를 체결하여 공유하고, 제한된 정보는 상호 질의 결과에 한해 양자 공개하여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였다.
이 같은 NNFL은 하나의 국가에만 영향을 끼칠 것으로 예상하기 쉬우나, 해당 국가의 인허가 대상 핵물질이 아닌 물질이 발견되면 인접 국가의 도움을 받아 원산지를 추적할 수 있다. 미국은 캐나다와 함께 이와 같은 가상의 시나리오를 구성하여 양국의 유관 기관 간의 시행 결과를 공유하였다. 이 발표는 양자간 외교채널을 통한 인접국의 NNFL 활용 가능성이 높음을 시사하였다. 구소련 국가인 조지아, 우크라이나, 아제르바이젠, 몰도바 역시 네트워크 GUAM체계를 구성하여 국경이나 인접국에서 발견된 불법핵물질의 원산지 추적에 상호 협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 KINAC-SIPRI 세미나에서 개최 배경 설명 및 개회사를 하고 있는 최관규 정책연구센터장
동 세미나는 NNFL이 각 국가별로 핵주기와 원자력 산업 환경에 따라 NNFL을 다른 형태로 구축할 수는 있으나 핵안보를 위해 필수적인 기술임을 확인하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IAEA는 동 세미나에 배석하지 않았으나, NNFL 구축 지침서에 동 세미나의 결과를 반영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와 동시에 IAEA는 추후 핵감식 체제 구축을 주제로 10월에 개최 예정인 제3차 KINAC-SIPRI 워크숍에서 NNFL 구축 지침서를 발표할 수 있기를 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