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플 스토리 전문가들이 들려주는 현장의 이야기

"핵물질의 올바른 사용을 위하여 안전조치를 이행한다"

한국원자력연구원(KAERI) 원자력통제실 김인철 실장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KINAC) 안전조치실 허철 선임연구원


불행하게도 역사 속에서 원자력을 이용하게 된 시작점은 전쟁이었다. 제2차 세계대전 동안 미국과 유럽, 소련을 비롯한 각 국가는 핵무기를 개발해 전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 했다. 결국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핵무기가 투하되는 데까지 이른다. 제2차 세계대전은 종료되었지만 각 국가는 핵무기가 엄청난 참상을 초래한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전 세계적으로 원자력을 평화적으로 이용하자는 운동이 벌어지고 국제원자력기구(IAEA)가 창설됐다. 이 IAEA의 핵심 기능 중 하나가 '안전조치(Safeguards)'로 원자력을 올바르게 사용하기 위한 기본 활동이다. 우리나라에서 이 안전조치를 위해 힘쓰는 한국원자력연구원(KAERI) 원자력통제실 김인철 실장,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KINAC) 안전조치실 허철 선임연구원을 만나 더 자세히 알아보자.

안전조치, 핵비확산을 위한 토대

▲ 김인철 실장은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을 위한 안전조치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안전조치 전문가이다.

원자력이 평화적인 목적 이외에 다른 목적으로 전용되는 것을 방지하는 활동인 핵비확산은 크게 안전조치와 수출입통제라는 수단을 통해 이루어진다. KINAC 안전조치실의 허철 선임연구원은 "안전조치란 핵물질이 군사적으로 전용되지 않고, 평화적으로 사용될 수 있게 하는 것"이라며 "핵물질의 격납 및 감시, 사찰, 계량관리 보고 등의 방법으로 안전조치 목적을 달성한다"라고 설명했다.

안전조치의 대상이 되는 것은 특정핵물질로서, 여기에는 토륨, 우라늄, 플루토늄 및 그 화합물이 포함된다. 우리나라에서 핵물질을 평화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모든 시설이 안전조치의 대상이며, 원자력발전소, 원자력연구원, 핵연료제조시설 등 원자력시설이 40여개, 대학교 및 산업시설 등 소량핵물질 사용 기관이 220여개 존재한다.

KAERI 원자력통제실 김인철 실장은 핵물질 이용시설의 입장에서 하고 있는 안전조치 업무를 설명했다. "KAERI에는 신규건설될 기장연구로를 포함한 12개 물질수지구역(MBA)과 파이로프로세싱(pyro-processing) 연구시설 등 핵주기 연구시설 등 안전조치 대상이 다양하다.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시설의 특징에 따라 사찰 방식을 달리하는 데, 사찰관 도착 24시간 또는 2시간 전에 사찰을 통보하는 단기 통보 무작위 사찰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또한, 원자력시설의 핵물질 재고 검증을 위해서 정기적인 물자 재고 검사도 수행합니다. 이러한 내용에 따라 IAEA에서 사찰이 나오면 사전 브리핑과 미팅을 하고 사찰 내용에 대해 토의를 진행합니다. 그 후 실제 현장에서 사찰을 진행하고 사찰 후에도 사찰하면서 발생한 문제점에 대해 토의합니다. 한 마디로 IAEA의 원자력연구원 사찰을 지원하고 함께 확인하는 역할을 하는 셈입니다."

국가검사를 통한 핵투명성 확보

▲ 허철 선임연구원은 우리나라가 원자력 평화적 이용 및 안전조치의 선진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KINAC 같은 규제기관은 그 중간 조정자로서 그 역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IAEA의 활동과 별개로 이러한 안전조치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자체적으로 국가검사라는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허 선임연구원은 IAEA는 한정된 자원으로 대상 국가 및 시설을 모두 사찰할 수 없기 때문에 국가검사 및 체제를 통해 국가별로 스스로 핵투명성을 증명하길 원한다고 했다. 특히 우리나라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및 안전조치의 선진국으로서 이러한 국제 변화에 선도적으로 대응해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2014년 국가 수준 안전조치 체제(SLA)를 도입하면서 우리나라의 핵투명성을 더 강화하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했다.

"이전에는 IAEA 사찰 시 검사원이 동행하여 국가검사를 시행했으나 개편 후에는 국가검사를 분리하여 진행합니다. 이는 IAEA 없이도 우리나라가 자체적으로 핵무기 비확산이라는 안전조치의 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김 실장은 "국가 수준 안전조치로 개정된 후에 가장 큰 변화라면 연구원 차원에서 사용후핵연료 재활용 시설인 파이로프로세싱 연구시설과 관련한 관리를 강화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핵투명성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파이로프로세싱 연구시설이 중요하므로 기존 사찰 대상 분류에서 새로운 카테고리를 만들어 별도 관리하고 있지요. 그러면서 사찰과 IAEA 보고 횟수가 늘어났습니다. 사찰이 늘어나는 것이 담당자 입장에서는 피곤할 수 있지만 반대로 그만큼 투명한 운영을 보여줄 기회가 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평가했다.

협의하고 조정하는 소통능력이 중요해

KINAC은 국가검사의 이행과 IAEA 사찰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월성원자력본부의 중수로에 대한 IAEA 사찰 및 국가검사에서 사용후핵연료 보관 현황을 검증할 때 KINAC이 개발한 중수로 사용후핵연료 검증장비(OFPS)를 사용한다"라며 우리나라의 안전조치 관련 장비의 우수성도 소개하며, KINAC이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핵투명성을 높여 가고 있음을 언급했다.

허 선임연구원은 IAEA 사찰 지원 업무는 IAEA 사찰관과 국내 원자력시설 사이에서 중간 조정하는 역할이 중요하다고 밝혔다. 서로 오해가 없도록 설명하고 조정하며 필요한 정보를 정확하게 전달해야 만일의 경우 안전조치 의무 불이행으로 판단되어 문제가 생기거나 극단적으로는 외교적 문제로 비화되는 것을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 팀장 역시 안전조치 업무에서 중재와 소통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언급했다. "최근 IAEA와 현장 사찰 당시 의견이 불일치한 적이 있었습니다. 원칙적으로 IAEA는 추가접근이라는 방식의 방문 시 사찰 대상이 되는 시설을 당일에 명확히 통보해 줘야 하는데 문서가 아닌 구두로 통보하고 사찰을 진행한 경우가 있었습니다. 또한 관계없는 시설을 통과해 사찰할 경우 사찰 범위가 달라지고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문제제기를 한 바 있습니다. 사찰 후 IAEA와 논의를 통해 원칙을 다시 조율했습니다. 이처럼 연구원의 특성을 반영하면서도 IAEA와 의견충돌이 일어나지 않도록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 허 선임연구원은 안전조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소량핵물질 취급시설, 대학교 등의 안전조치 인식을 제고하는 아웃리치 활동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렇기에 김 실장은 안전조치 이행에서 3가지 자질을 강조했다. "첫 번째는 책임감입니다. 안전조치 업무는 국제협약에 근거해 이행하므로 개인이 아니라 국가 차원의 문제가 될 수 있음을 유념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소통능력입니다. IAEA 측과 끊임없이 협의하고 의견교환을 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정확성이 중요합니다. 꼼꼼하고 세심하게 관리하고 정확한 보고서를 적시에 보내야 합니다."

안전조치 업무에 필요한 자질에 대해 허 선임연구원은 "핵물질 및 원자력 시설에 대한 이해 등 원자력에 대한 지식은 기본이고 법·규정·협정에 대한 이해가 중요하다"라고 덧붙였다. "그 밖에도 사업자를 대할 일이 많기 때문에 검사에 있어서는 원칙적 태도를 유지해야 하며, IAEA 사찰 지원에 있어서는 원자력시설과 국제기구 사이의 조정기능을 수행하여 문제 발생시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국내 안전조치 대상에는 국가시설외 지점(LOF)이라고 부르는, 소량핵물질 업체 220곳이 존재한다. 이에 허 선임연구원은 "현재 KINAC 안전조치실 인력이 12명인데 원자력시설 40여개 뿐만 아니라 220여개 LOF 시설까지 담당하고 있어 인력이 턱없이 부족한 것이 애로사항이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KINAC은 대규모 원자력시설의 안전조치 담당자뿐만 아니라 대학교, 소규모 업체들의 안전조치 인식을 끌어올리려 노력하고 있다. 허 선임연구원은 "KINAC은 작년부터 학회와 연계해 안전조치 관련 워크숍을 매년 개최하고 있고 『핵연료주기 관련 연구자를 위한 보고가이드』를 발행하는 등 아웃리치 활동을 강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리하여 이상적으로는 규제가 없어도 각 시설의 구성원들이 스스로 안전조치를 이행하는 것이 꿈이라고 말한다.

▲ 김 실장은 앞으로의 계획을 묻는 질문에 예전부터 지금까지 늘 변함없이 안전조치 업무에 성실하게 임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실장은 KINAC의 이런 매개체 역할을 높이 평가하면서 "안전조치 관점에서 원자력안전위원회가 아버지 역할이라면 KINAC은 맏형 역할이다. 시설의 입장에서 맏형 역할을 더욱 충실히 해주길 바랄 뿐이다. 지금처럼 계속 시설의 의견도 잘 수렴해서 정책에 반영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의미다"라고 제언했다.

마지막으로 두 전문가는 안전조치 이행을 위해서 챙겨야 할 것이 많다며 지금과 다름없이 늘 성실하게 업무를 해나가겠다고 밝혔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이라는 큰 사명은 이렇게 최전선에서 묵묵히 일하는 사람들을 통해 실현되는 것임을 알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