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앞으로 100초 남은 지구 종말 시계
"파국을 막으려면 이제는 행동해야할 때"

얼마 전 '지구 종말까지 남은 시간이 100초'라는 보도가 있었다. 바로 '지구 종말 시계(Doomsday Clock)' 발표 이벤트였다. 지구 종말 시계는 실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시곗바늘이 날마다 째깍 째깍 움직여 종말에 다가가는 진짜 시계가 아니라 일종의 비유다.
인류가 만든 기술이 인류 문명을 얼마나 파괴하고 있는지 경고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가상의 시계가 지구 종말 시계다. 지구 종말을 '자정'으로 설정하고, 세계가 지구 재앙에 얼마나 가까워졌는지를 자정에 가까운 시각으로 나타내는 지표다.

핵무기 위협의 긴급함을 알리기 위해 시작

지구 종말 시계는 맨해튼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미국 시카고 대학교의 과학자들로부터 시작됐다. 1945년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투하된 원자폭탄의 참상을 지켜 본 이들은 핵무기가 인류에게 가장 큰 위협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이에 1947년, 시카고 대학교 과학자들은 대중에게 핵무기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핵과학자회보(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라는 잡지를 발행하기 시작했다. 잡지의 표지 디자인을 맡은 예술가 마틸 랭스도프는 핵 위협의 긴급함을 반영해 카운트다운되는 시계를 선택했다. 인류가 핵무기를 통제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이것이 지구 종말 시계의 시작이었다.

1947년 11시 53분으로 시작된 지구 종말 시계와 지구 종말 시계가 그려진 핵과학자회보 잡지 표지.

당시에는 인류에게 가장 큰 위협이 핵무기였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지구 종말을 앞당기는 위협 요인이 다양해졌다. 2007년부터 지구 종말 시계는 핵무기 외에도 기후변화로 인한 치명적인 영향을 추가했다. 현재는 바이오 테러리즘, 인공지능, 사이버 공격 등도 위협의 대상으로 고려되고 있다. 지구 종말 시계는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실시간으로 바뀌지는 않는다. 1년에 한 번 또는 주요 사건이 있을 때 시간을 설정한다. 초기에는 핵과학자회보의 편집장이자 생물 물리학자인 유진 래비노비치가 시곗바늘의 이동 여부를 설정했다. 그는 세계 각지의 과학자 및 전문가들과 논의한 뒤 이를 바탕으로 시곗바늘이 어디에 맞춰져야 하는지 결정했다. 그가 사망한 뒤에는 핵과학자회 소속의 과학안보위원회가 이 임무를 맡고 있다.

이들은 노벨상 수상자 13명이 속한 이사회 등 다양한 분야의 동료들과 교류하고, 1년에 두 번씩 모여 정책과 외교, 에너지, 핵무기, 기후 과학 등의 문제를 논의하여 시각을 재설정한 뒤 1월 말에 발표한다. 그래서 지구 종말 시계는 미래를 예측한다기보다는 이미 발생한 사건을 바탕으로 진단을 내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가능한 한 많은 상황을 고려해 지구에 위협이 되는 정도를 판단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종말이 올 수 있음을 경고하는 것이다.

11시 53분으로 시작해 현재는 11시 58분 20초

제리 브라운 캘리포니아 전 주지사 (왼쪽), 메리 로빈슨 아일랜드 전 대통령(가운데) 반기문 UN 전 사무총장(오른쪽)이 2020년 지구 종말 시계의 시각을 발표하고 있다. ©핵과학자회

1947년 지구 종말 시계는 자정을 7분 남긴 11시 53분으로 시작됐고, 인류에게 위험했던 사건이 반영돼 지금까지 총 24번 바뀌면서 자정에 가까워졌다가 멀어졌다가를 반복했다. 시계가 시작된 이래 자정에서 가장 멀어졌던 때는 1991년으로, 미국과 소련이 첫 번째 전략무기감축협정(STARTⅠ)에 서명하고, 소련이 해체된 시기였다.

이때의 지구 종말 시계는 자정보다 17분 앞선 11시 43분이었다. 그러나 이후 미국과 러시아 등 핵 보유국들이 핵무기 감축에 진전을 보이지 않고, 인도와 파키스탄, 북한의 핵실험과 새로운 위협으로 떠오른 기후변화 등으로 지구 종말 시계는 점점 자정에 가까워지게 됐다.

2020년 지구 종말 시계는 자정까지 불과 100초밖에 남지 않은 11시 58분 20초로 발표됐다. 지구 종말 시계가 시작된 이래 종말에 가장 가까운 시간이다. 레이첼 브론슨 핵과학자회 회장은 지구 종말 시계의 시각을 발표하며 "우리는 이제 세계가 종말에 얼마나 가까워졌는지를 분이 아닌 초 단위로 표현하게 됐다"고 말했다.

인류가 처한 상황이 그만큼 위급하다는 것이다. 시곗바늘을 앞당기게 한 가장 큰 요인은 역시 핵무기 위협과 기후변화였다. 북한과 미국의 협상이 결렬되고, 이란과 미국의 긴장이 고조되면서 핵 위협이 높아졌으며, 기후 변화에 대한 세계 각국의 대응이 여전히 미흡한 탓이었다.

1947년부터 2020년까지의 지구 종말 시계 시각 변화. 핵무기 위협과 기후변화로 2020년 지구 종말 시계는 자정을 불과 100초 남긴 11시 58분 20초가 됐다. ©위키미디어

'지구 종말까지 남은 시간이 100초'라고 선언한 핵과학자회는 종말을 막기 위해 행동할 때라고 강조한다.
인류는 핵무기와 기후변화 등의 위험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 실질적인 조치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2021년에도 같은 시각으로 설정, 지구 종말을 막기 위해 진짜 행동해야 할 때

올해 1월 27일에 발표된 지구 종말 시계는 지난해와 같은 시각으로 설정됐다. 핵과학자회는 핵무기와 기후변화의 위협이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여러 국가에서 핵 프로그램이 여전히 가동되고 있거나 심지어 더 가속화되고 있으며, 미국 국회의사당에서 일어난 공격과 트럼프 전 대통령이 보여준 대응 등은 핵무기 사용을 독점적으로 통제하고 있는 국가 지도자들에 대한 우려를 다시 불러 일으켰다.

2021년 지구 종말 시계 발표에는 코로나19 팬데믹이 핵무기, 기후변화 같은 인류를 위협하는 사태에 대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음을 보여주었다면서 이제는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야할 때라고 말했다.©핵과학자회

핵과학자회는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 팬데믹은 역사적인 '경종' 역할을 했다고 설명했다. 각국의 정부와 국제기구들이 현재 인류에게 실존적 위협을 가하고 있는 핵무기와 기후변화, 치명적인 전염병과 전쟁 등에 대한 위험을 관리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이번 코로나19 팬데믹을 통해 생생하게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이들은 당장 신속하고 포괄적인 조치들을 시행하지 않는다면, 지구 종말 시계는 자정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지구 종말 시계는 사람들에게 괜한 두려움을 심어준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하지만 인류가 지구에서 살아남으려면 반드시 해결해야 할 위험을 대중에게 상기시켜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핵과학자회는 인류가 종말을 막기 위해 행동할 수 있도록 끊임없이 박차를 가하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만을 위한 핵비확산 노력처럼 인류는 핵무기와 기후변화 등의 위험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찾아 행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협약의 추가 조인, 군축 등 핵무기 사용 위험을 줄이고 핵무기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기 위한 실질적인 조치에 박차를 가해야 할 것이다. 전 세계가 협력해 지구 종말 시계의 시곗바늘을 늦춰야 할 때다.

다운로드
Share on Facebook Share on Naver Share on kakaostory Share on Twitter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