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소형모듈원자로, 핵비확산과 핵안보에
새로운 도전을 제기하다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선언에 따라 세계 각국은 원자력을 에너지원으로 활용하기 위한 기술을 개발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1960년대 이후 기술 완성도가 높고 무기로 전용될 가능성은 낮은 가압경수로가 고안됐고 이후 전 세계 원전시장을 주도했다. 시간이 지나 원전은 발전량을 늘리고자 대형화되었고 규모의 경제를 통해 가격을 낮추는 방향으로 발전해 왔다.

그러나 대형 원전은 건설에서 가동까지 보통 6년이라는 긴 시간이 필요했고 비용도 많이 들었다. 또한 체르노빌 원전 사고 이후 안전성을 획기적으로 높인 원자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1980년대 이후 미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고립된 도서 산간벽지나 대형 발전소로부터 송배전이 불가한 지역에 설치하여 전력을 공급할 목적으로 소형 원자로 개발이 필요하다는 논의가 시작되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도 원자력 산업의 새로운 방향을 모색해 왔다. 안전성과 경제성, 기술력 등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 대형 원전의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바로 소형모듈원자로(Small Modular Reactor, SMR)다.

기존 상용 원전의 대안, 소형모듈원자로

SMR은 전기출력이 300메가와트(MW) 이하인 원자로를 말하는데 하나 또는 다수의 원자로를 추가할 수 있는 모듈방식으로 설계된 것을 지칭한다. 전 세계에서 다양한 목적으로 50개 이상의 SMR 설계가 진행 중이며, 현재 개발 중인 기술은 물을 냉각재로 쓰는 경수로가 주력이지만 가스냉각로, 고속로 등 매우 다양하다. 이 중 아르헨티나의 CAREM25(경수로), 중국의 ACP-100(경수로) 등이 건설 중에 있다. 중국 HTR-PM(고온가스냉각로)은 시운전에 돌입했으며 러시아의 KLT-40S(부유식 동력장치), 인도의 PHWR-220(경수로)은 이미 운영 중이다.

한국형 SMR인 SMART의 모식도. 대형 원전에서 각기 따로 위치했던 증기발생기, 냉각재 펌프, 가입기 등 주요 기기를 원자로 격납용기 안에 넣은 일체형 원자로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KAERI)

우리나라는 1997년 SMART라는 SMR 개발에 착수해 2012년 세계 최초로 SMR형 원자로 표준설계 인가를 규제기관으로부터 획득했다. 최근에는 혁신기술을 적용한 혁신소형모듈원자로(i-SMR)을 민관 합동으로 개발하기로 한 바 있다. 미국 역시 NuScale이라는 SMR을 개발해 2020년 8월 설계 인증을 획득하고 아이다호연구소 내 건설을 확정했다.

이렇듯 국내외에서 SMR이 주목받는 이유는 높은 안전성 때문이다. SMR은 대형 원전에 비해 출력이 낮지만 그 덕분에 사고 발생 때 각 연결 부위에서 방사성 물질이 유출될 위험이 대형 원전보다 훨씬 적다. 또한 원전 사고의 주요 원인인 붕괴열은 용량이 작을수록 줄어들기 때문에 SMR의 경우 비상냉각장치나 비상전원 없이도 붕괴열을 자연스럽게 외부로 방출하도록 할 수 있다. 냉각수 공급을 위한 외부 보조전력이 별도로 필요하지 않은 것이다. 또한 SMR은 모듈화 상태로 제작돼 설계가 상대적으로 단순하며 부품을 조립하는 것과 유사해 건설기간이 2년에 불과하고 미국 및 유럽에서는 자체 제작이 가능하며 초기비용이 적게 든다는 장점이 있다.

이와 더불어 최근 세계적으로 환경 이슈와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이 대두되면서 에너지 산업에서 탄소 중립을 실현할 수 있는가가 중요한 문제이다. SMR은 탄소 배출을 줄이는데 기여하며 기존 원자력 발전의 안전성을 더욱 강화하고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보급할 수 있는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주목받고 있다.

SMR, 핵비확산과 새로운 도전과제를 마주하다

SMR이 대형 원전에 비해 안정성과 효율성 면에서 유리하다고 해도 핵비확산의 관점에서 엄정한 규제가 필요하다. 원자력 이용의 기본은 평화적 목적으로만 사용하는 것이며 무기로의 전용을 방지하기 위해 안전조치(Safeguards)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SMR 설계 및 운영 단계에서 고려할 요소들이 있다.

SMR은 연료 교체 주기가 3년에서 40년까지로 상대적으로 길기 때문에 원하는 출력을 얻기 위해 대형 원전에서보다 고농축인 우라늄을 연료로 사용한다. 고농축 우라늄은 핵무기로의 전용이 상대적으로 쉽다. 따라서 SMR이 저장하고 있는 핵물질의 양을 저감하고 핵물질에 대한 지속적인 관리가 가능하도록 해야 한다. 또한 SMR을 설계할 때부터 안전조치 활동을 고려해야 한다. 핵물질에 대한 봉인, 격납, 사찰 등이 이루어져야하기 때문에, 이들 활동을 고려해 SMR의 구조를 설계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SMR 설계팀과 IAEA 사찰관 또는 각 규제기관이 협조할 필요가 있다.

SMR은 대형 원전보다 크기가 작고 부품도 더 적어 부지의 제약을 받지 않아 외진 곳에 설치할 수 있다. 이는 분명히 장점이지만 새로운 문제를 야기한다. 바로 사찰관의 접근과 무통보 사찰을 어렵게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SMR 설치 시 상시 감시가 필요한지, 해당 원전이 독립되어 있는지 또는 다른 시설에 연결되어 있는지, 이동 가능한지 등을 따져야 한다.

SMR은 상용 원전과 다르게 기존 방식의 사찰을 어렵게 하는 측면이 있으므로 설계 시 이를 고려해야 한다. ©IAEA

특히 오지에 설치되는 것을 감안해 다수의 SMR은 원격 감시와 원격 제어 작업이 가능하도록 설계되고 있다. 이 경우 안전조치 측면에서는 SMR에서의 활동을 확인할 수 있도록 위성이나 원격 탐사 장비 등 감시 설비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감시 설비를 사찰기관과 운영자가 공유할 것인지도 미리 약정해야 한다.

안전조치 기술이나 장비에 있어서도 변화가 필요하다. 초고온가스로나 고속중성자로에 기반을 둔 SMR은 기존 원전과 다른 핵연료와 냉각재를 쓰기 때문에 기존 카메라나 광학장비로 검증하기 어렵다. 새로운 감시 장비와 안전조치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SMR은 원자로 종류, 냉각재, 구성 등에 있어 상용 원전과 다르고 신기술을 접목하고 있어 기존의 안전조치 방법 및 규제 기준을 적용하는 데 문제가 있다. 따라서 설계 및 건설 과정에서부터 안전조치를 고려하는 것이 효과적이며, 적합한 규제체제를 개발해야 한다.

물리적방호와 사이버보안 체계도 더 세밀해야 할 것

SMR의 핵연료 농축도가 높고 다수의 원자로를 연결할 수 있어 용량이 가변적이라는 점, 원격 제어 등 새로운 장비를 활용한다는 점은 물리적방호 및 사이버보안 측면에서도 새로운 도전을 제기한다. 핵안보 관점에서 SMR은 앞서의 논의와 마찬가지로 설계 단계에서부터 물리적방호 및 사이버보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

SMR의 물리적방호 시스템을 설계하고 평가하기 위해서는 핵연료 정보, 시설 내 핵물질 저장소 및 운송 방법, 출입통제, 핵심구역 방호, 물리적방호 인력 및 방호장비 등을 고려해야 한다. 원전 설계 단계에서부터 체계를 갖춰야 하는 부분인 것이다.

모델에 따라 다르지만 SMR은 보안 인력을 통한 능동적 방호와 달리 인력이 없이도 보안 수준을 유지하는 피동적 보안 시스템을 고려해야 한다. 사보타주에 대비해 튼튼한 방벽과 철저한 감시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또한 위협 발생 시 외부 대응군의 신속한 출동을 통해 적시에 대응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새로운 개념의 보안시스템 개발과 더불어 관련된 제도적 절차에 대한 연구가 필요하다.

한편 SMR을 외진 곳에 설치할 경우 물리적방호 측면에서 테러 집단의 접근을 어렵게 한다는 장점도 있지만, 동전의 양면처럼 테러집단의 점령 상황에서는 외부 대응군이 빠르게 접근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물리적방호 설계에 있어 공격자의 경로 분석과 취약성 평가가 이뤄져야 하며 사례별로 맞춤화된 대응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

사이버보안에 있어서도 SMR은 새로운 도전과제를 제기한다. SMR은 기존 원전에 비해 그 설계가 단순하다. 이는 운영이나 유지보수 측면에서는 유리할 수 있으나, 기존 원전처럼 다중적으로 다양한 설비를 설치할 수 없다는 의미가 된다. 안전계통에 독립성, 다중성, 다양성의 설계원칙을 적용하지 않은 제어시스템은 한 번의 사이버공격으로도 무력화될 수 있는 위험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SMR 설계단계에서부터 사이버보안성을 평가하여 위협을 줄일 수 있는 조치를 최대한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

SMR은 원격 제어 등 물리적방호와 사이버보안에서 새로운 문제를 야기하므로 엔지니어와 규제기관이 함께 소통하고 의견을 교환하는 협력이 필수다. ©shutterstock

또한 다수의 SMR은 원격운전과 원격 유지보수를 고려하고 있다. 이러한 경우 원전의 제어시스템은 외부 네트워크와 단절되어야 한다는 분리정책을 적용할 수 없다. 따라서 SMR의 원격운전과 원격 유지보수를 위한 통신보안 요건이 새로 개발되고 설계단계에서 적용되어야 하는 것이다.

SMR은 차세대 원전으로서 기존의 상용 원전과 많이 다르며 특히 연료 형태와 교체 주기가 상이하기 때문에 기존의 보안 조치보다 더 세밀하면서도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전략이 필요하다.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면서 생기는 도전은 당연히 해결해야 할 상수이다. 이를 위해 설계 단계에서부터 핵비확산 및 핵안보를 고려할 필요가 있다. SMR이 미래 세대를 위한 차세대 원자로로 온전히 기능하기 위해 해결해야 할 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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