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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로를 새롭게 즐긴다, '뉴트로' 열풍

"촌스러운 옛 것은 거부한다는 생각이 촌스러워진 시대",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옛 것과 현대를 구분하지 않는다. 분식집 초록 접시부터 2000년대 '소몰이' 창법의 향수를 불러일으킨 MSG워너비, 90년대 입었던 부츠컷 청바지 등 복고풍 옷까지…. 음식, 음악, 패션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과거에 유행했던 요소를 재해석한 결과물을 내어놓는 뉴트로 열풍은 옛날 추억에 잠긴 기성세대의 문화만이 아닌, 스스로가 좋아하는 것에 만족을 느끼고 기존 것을 새롭게 만들어보는 데 재미를 느끼는 미래 세대가 발전시킨 문화다.

오래됐지만 새롭다는 의미로 뉴(New)와 레트로(Retro)를 결합한 '뉴트로(Newtro)'라는 신조어를 탄생시킨 이 새로운 문화는 그래서 특정 시대와 지역을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50년대 미드 센추리 문화, 60~70년대 히피 문화, 80~90년대 아날로그 감성, 가깝게는 21세기 초입의 비교적 새로운 00년대 문화까지. 10대와 20대, 소위 'Z세대'라고 불리는 이들은 자신들이 경험하지 못한 문화라면 시대에 상관없이 새롭게 받아들인다. 모든 시대를 아우르는 폭넓은 소재는 뉴트로 문화 열풍이 쉽게 사그라지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단순한 복각에 그치지 않고 아이템에 현대적인 가치를 부여하는 점도 뉴트로 열풍의 특징이다. 오래됐지만 새로우며, 촌스럽지만 멋스럽다. 심지어 미래세대는 뉴트로를 단순히 놀이로만 즐기는 것이 아니라 익숙한 온라인 매체를 활용해 본인의 세계를 구축하거나, 수익을 창출하는 방법으로도 활용하고 있다. 옛것에 새것을 담는 신복고(新復古), 뉴트로 문화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만한 몇 가지 사례를 소개한다.

디자인과 패션, 음식에서도 뉴트로 열풍

이탈리아의 명품 브랜드 펜디가 휠라와 협업해 출시한 핸드백. ©FILA

뉴트로 문화의 가장 대표적인 분야는 디자인과 패션이다.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처럼 과거에 유행하던 패션과 디자인을 시대에 맞춰 조금씩 변형해오던 형태에서 뉴트로 시대에는 전혀 다른 분야와의 콜라보를 통해 새롭게 탄생한다. 70년 된 밀가루 브랜드 곰표의 로고가 박힌 패딩이 처음 탄생했을 때 기성세대들은 그저 재밌다는 정도의 반응이었다면, MZ세대들은 이를 SNS을 통해 유행으로 만들어 냈다.

한물간 브랜드 취급받던 휠라의 어글리 슈즈, 동대문 밀리오레 언니들의 상징이었던 벨벳 소재 트레이닝복처럼 처음 볼 때는 우스꽝스럽지만 어느 순간 유행이 되어버린 뉴트로의 빅 웨이브는 소위 말하는 명품 브랜드도 삼켜버렸다. 이탈리아의 유명 명품 브랜드 펜디는 로고를 대문짝만하게 찍은 핸드백과 져지를 출시해 뉴트로 열풍에 큰 호응을 얻으며 급부상했다. 셀린느, 버버리, 구찌 같은 백화점 브랜드도 후드가 달린 떡볶이 코트를 새 시즌 주력 아이템으로 패션쇼에 올리는 등 이제 뉴트로 열풍은 패션 업계를 주도하는 큰 흐름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할매입맛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글이 SNS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인스타그램 캡쳐

디자인과 패션을 넘어 음식에서도 뉴트로는 대세다. 쑥, 흑임자, 인절미, 팥, 단호박 등 어르신들의 간식으로만 여겨져 '트렌디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전통음식 재료가 뉴트로 열풍을 타고 Z세대 사이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흑임자·쑥 라떼, 꿀 인삼빙수, 인절미 아이스크림 등 전통음식을 현대적인 감성에 맞게 재해석한 디저트와 음료들이 앞다퉈 출시되고, MZ세대는 '할매입맛'이라는 해시태그와 함께 해당 제품에 대한 사진과 후기, 심지어 직접 만든 레시피까지 공유하며 이에 화답하고 있다.

이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물만 3만 7천 개가 넘는다. 이들을 일컬어 '할메니얼(할머니+밀레니얼 세대)'이라고 부르는 신조어도 생겨났다. 신선하고 색다른 경험을 추구하는 이들에게 전통음식은 익숙하지 않고 오히려 튀어 보이기까지 했던 것이다. 식품업계 전문가들은 '할메니얼' 식품의 인기가 당분간 식지 않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Z세대 일상에 깊숙이 침투한 뉴트로, 스포츠까지 유행

스마트폰이 익숙한 Z세대는 적극적으로 불편함을 추구하며 뉴트로 문화를 이끌어가고 있다. ©shutterstock

뉴트로 열풍은 라이프 스타일에도 깊숙이 침투했다. MZ세대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의 변화를 겪으면서 적응했던 세대라면 2000년대 이후 출생한 지금의 Z세대는 이미 태어났을 때부터 디지털로 이루어진 사회에 익숙한 세대들이다. 말문이 트는 것보다 더 빨리 스마트폰을 통해 통화, 인터넷, 음악 감상, 사진 촬영, 게임까지 한 방에 해결하는 편리한 일상에 익숙해진 세대다. 인류 역사상 가장 혁신적인 아이템 중 하나인 스마트폰의 수혜를 입은 이들이 적극적으로 불편함을 추구하는 것은 뉴트로 유행의 또 하나의 특징이다.

이들은 스마트폰을 이용해 오프라인과 온라인의 경계를 없애고, 과거의 것을 이용하는 것이 아닌 스스로가 새롭게 창조해나가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두껍고 무거운 필름카메라를 이용해 사진을 찍고 그것을 디지털로 꾸미고 변환시켜 SNS에 업로드하고, 턴테이블과 최신 블루투스 스피커를 조합한 인테리어를 완성해 SNS에서 자신의 공간과 아이템을 공유한다. 뉴트로는 '우리가 이렇게 했었으니까 너희도 이렇게 해'라는 식의 기성세대가 만들어 낸 유행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닌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새로운 과거를 접하는 방법이라고 볼 수 있다.

대전시티즌 축구단이 선보인 뉴트로 유니폼. ⓒ대전하나시티즌

뉴트로 라이프 스타일은 스포츠에서도 만나볼 수 있다. 대전시티즌 축구단은 올해 후반기에 홈구장으로 사용하는 대전 월드컵경기장 보수로 인해 일시적으로 과거 홈구장으로 사용했던 한밭 종합운동장을 사용했다. 대전 구단은 기왕 이렇게 과거 홈구장에서 경기를 하게 됐으니 과거 사용했던 유니폼을 입고 선수들이 뛰면 화제가 되겠다는 아이디어를 냈다. 이 전략은 마케팅팀의 예상보다 더 큰 반향을 일으켰다. 소위 무지개떡 패션으로 불리는 촌스러운 디자인에 현 구단주인 하나은행의 상징색을 입혀 재탄생한 뉴트로 유니폼은 오래된 팬에게는 향수를, 그 시절을 경험한 적 없는 축구팬에게는 신선함을 불러일으켰다. 한정판으로 제작한 300장의 유니폼은 경기가 끝나기도 전에 '완판'됐다.

오래된 것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뉴트로 문화

뉴트로 문화는 이제 개인만의 문화를 넘어서 사회에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뉴트로 열풍은 과거 정책으로 시도됐던 '원도심 살리기', '골목상권 살리기' 등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특히 성수동 골목은 뉴트로 풍 라이프 스타일을 선도하는 뉴트로의 성지다. 제조업 특수와 함께 산업화 시대의 특수를 누렸던 곳이지만 관련 산업이 하나둘씩 쇠락하여 낡은 건물만 남은 이곳이 MZ세대의 감성을 만나 새로운 공간으로 탄생하면서 '뉴트로스러움'을 불어넣었다. 비슷하게 생긴 붉은 벽돌 건물 중 한 곳을 택해 문을 열고 들어가면 외관만 봐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세련된 공간이 펼쳐진다. 오래된 학교에나 있을 법한 시멘트 바닥에 중후한 원목 식탁을 두고 파스타를 파는 이오로 비스트로, 전원일기에서 본 파란 대문을 열고 들어가서 사무실 철제 의자에 앉아 아아를 마시는 카페 우디집, 디귿자 모양의 자동차 정비소를 리모델링 해 도심 속 정원을 꾸민 성수 가든 등, 오래된 양식에 현대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버무린 다양한 공간을 만날 수 있다.

무거운 필름카메라, 턴테이블 등 뉴트로 문화는 오래되고 낡은 소품에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shutterstock

뉴트로 열풍은 환경 이슈에 민감한 미래 세대의 전략적 선택이다. 오래된 건물, 낡은 소품, 진부한 생활 스타일에 현대적인 아이디어를 도입하여 유산을 재활용하고 다시금 생명력을 불어넣는다. 뉴트로 스타일을 주도하는 젊은 세대의 익살스러운 아이디어 속에는 스스로의 미래에 대한 고심이 숨어 있다. 정신없이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 불확실한 미래에 관한 우려, 파편화되는 커뮤니티 안에서 젊은 세대는 뉴트로를 통해 과거를 돌아보고 지혜와 위로를 추구한다. 그래서 뉴트로 열풍의 생명력은 곧 젊은 세대의 불안함이기도 하다. 이러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뉴트로 문화의 유행은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지속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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