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이란핵합의(JCPOA) 협상 재개 전망과
한국에의 시사점

지금으로부터 꼬박 20년 전인 2002년 1월, 미국의 G.W.부시 대통령은 신년 국정연설에서 북한과 이란, 이라크 세 나라를 국제 테러를 지원하는 정권이라며 '악의 축'이라 지목하였고, 이로 인해 미국은 해당 국가들로부터 엄청난 반감을 얻게 되었다. 게다가 같은 해 8월 15일에는 이란의 반정부 단체인 '국민저항위원회'가 이란 중부의 나탄즈 지역에 우라늄 농축 시설이 존재한다고 폭로함에 따라 이란의 비밀 핵무기 개발 의혹도 불거지며 미국과 이란의 관계는 한층 더 악화 일로를 걷기 시작했다.

그러나 냉전 초기만 하더라도 미국과 이란의 관계는 지금과 매우 달랐다. 미국은 아직도 강력한 우방으로 남아있는 사우디아라비아와 함께 이란을 양대 축으로 삼아 중동지역 정세를 관리해 왔다. 이란이 핵 프로그램을 시작하게 된 것도 미국의 도움 덕분이었다. 1957년, 이란은 미국과 원자력협정을 체결하면서 미국의 지원을 받아 중동지역에서 선진적으로 원자력프로그램을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1979년 이후 이란이 이슬람 종교지도자에 의해 통치되는 체제로 바뀌면서 미국-이란 관계 역시 적대적으로 바뀌었고, 지금까지도 그 적대 관계는 쉽사리 풀리지 않고 있다.

이란핵합의(JCPOA) 성공과 미국의 탈퇴, 협상 재개까지

2015년 이란과 미국, 중국,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유럽연합은 이란의 비핵화를 약속하는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CPOA)'에 합의했다. ⓒ위키미디어

부시 대통령의 후임으로 민주당의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하고, 이란에서도 2013년 5월 중도파인 로하니 대통령이 정권을 잡게 되자 두 국가의 상황에 변화가 생겼다. 2015년 7월 14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포괄적 공동행동계획(Joint Comprehensive Plan of Action, 이하 JCPOA)'이 체결되면서 이란의 핵 개발을 둘러싼 미국과의 갈등이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JCPOA는 미국, 러시아, 중국, 프랑스, 영국과 독일로 구성된 'P5+1'과 유럽연합이 군사 목적을 위한 이란의 핵 개발 프로그램에 관해 오랜 협상 끝에 마침내 도달한 합의의 결과물이었다.

주요 사항은 이란의 농축 능력 및 우라늄 비축량을 제한하여 단기간 내에 핵무기를 만들지 못하도록 하고, 이란 아라크 에 위치한 중수로의 설계를 바꿔 무기급 플루토늄을 생산하지 못하도록 하며, 투명한 사찰을 통해 비밀리에 핵 프로그램을 개발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이었다. 이란이 이를 성실하게 이행한다면, 이란에 부과된 제재를 해제해 나가겠다는 것이었다.

2018년 5월 8일 미국 트럼프 전 대통령은 JCPOA에서 탈퇴했다. ⓒEvan El-Amin/Shutterstock

그러나 합의의 기쁨도 잠시, 오바마 대통령의 후임으로 2017년 취임한 트럼프 대통령은 JCPOA가 미국 역사상 '최악의 거래'였다고 줄곧 비판하다 급기야 2018년 5월 8일에는 공식적으로 JCPOA에서 탈퇴하고 미국의 대이란 제재도 복원시켰다. 이란은 이에 대한 대응조치로 우라늄 농축의 수준을 계속 높여왔다. 상황 개선의 출구가 보이지 않던 중에, 미국에서 다시 한 번 정권 교체가 이루어져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함에 따라 다시금 변화의 조짐들이 나타났다. 미국이 JCPOA로부터 탈퇴한 지 3년 반이 지난 2021년 11월 29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JCPOA를 복원하기 위한 협상이 재개되었다.

기대에 미치지 못하고 있는 협상과 그 배경

2021년 6월 이란에서는 강경하고 보수적인 성향의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위키미디어

많은 기대를 안고 시작된 협상 재개임에도 불구하고, 시작부터 험로가 예상되었고 상황은 여전히 극적으로 바뀌지 못하고 있다. 이런 배경에는 우선 이란 내 정치 상황의 변화가 있었다는 것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얼마 지나지 않은 2021년 6월 이란 역시 대통령 선거를 치렀는데, 이 선거에서 강경하고 보수적인 성향으로 알려진 에브라힘 라이시 대통령이 당선되었다. 라이시 대통령은 협상이 재개되자마자 미국이 협정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했던 책임을 묻겠다며, 그에 대한 배상과 전면적인 제재 해제를 요구하는 강경안을 내놓아 협상에 임하는 서방국가들을 당혹하게 했다. 게다가 라이시 대통령은 솔레이마니 혁명수비대 사령관 암살을 지시한 트럼프 대통령을 살인 혐의로 법정에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으며, 솔레이마니 사망 2주기인 2022년 1월 초에는 미군과 우방국을 향한 공격들이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기도 하였다. 요컨대 퍼트넘(Robert Putnam) 교수의 '양면 게임 이론(Two-level Game Theory)'이 지적하듯이 국내정치 상황의 변화가 국가 간 협상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JCPOA 협상 재개에 대한 전망이 밝지 않은 두 번째 이유로는 이란의 핵 활동이 지난 몇 년간 상당히 진행되었다는 점을 꼽을 수 있다. 협상이 타결되는 데 있어 역시 가장 큰 쟁점이 되는 것은 미국과 이란의 근본적인 입장 차이인데, 이란은 미국이 제재 해제를 먼저 단행해야 한다는 입장인 데 반해 미국은 이란이 먼저 합의 이후 위반하고 있는 조치를 철회한 뒤에야 제재를 해제하겠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란은 우라늄을 농축하기 위한 원심분리기를 증설하고 가동하며 핵 개발을 진척시켜 왔다. ⓒ위키미디어

그런데 미국의 요구가 받아들여지기에는 기술적으로도 이미 이란의 핵 활동은 많은 진전을 이룬 것으로 추정된다. 최근 과학국제안보연구소(ISIS)가 발표한, 2021년 이란의 핵 활동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이란은 현재 우라늄 보유량으로 3주 이내에 핵무기용 농축 우라늄 확보가 가능하고, 6개월 이내로 지하 핵폭발 실험을 실행할 역량을 갖추고 있으며, 고성능 원심분리기 건설 및 운영도 추진하고 있다. 이 보고서는 또한 북한 등과 함께 이란이 지속해서 제재를 위반해 왔다는 것도 강조하고 있다. 심지어 JCPOA 합의 당시 때와 비교해, 이란은 운반수단 기술에서도 진전된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21년 12월 말, 이란 군 당국은 자체적으로 개발한 인공위성 탑재용 로켓을 발사하는 데 성공했다고 발표했고, 그에 앞서서는 사정거리가 다른 탄도미사일 16발을 동시에 발사하는 훈련 모습을 공개하여 서방을 자극하기도 했다. 요컨대 2015년 JCPOA 타결 당시보다 교섭의 대가가 이미 상승한 상황이라고 볼 수 있다.

2021년 1월,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미국과 이란의 JCPOA 복원 협상이 재개되었다. ⓒShutterstock

그러나 올라간 비용을 지불하기에는 미국의 상황 또한 녹록지 않은데, 이는 또한 미국의 국내정치 상황과 밀접하게 맞물린다. 미국은 정권이 바뀔 때마다 이란에 대해 다른 관점을 보이며 접근방식도 달리해 왔다. JCPOA 합의에 대해 가장 비판적이었던 것은 미국 내에서는 공화당의 강경 보수 정치인들이었고 미국 밖에서는 이스라엘이었다. 물론 미국 정부에 대한 지지를 결정할 때 자국 정부의 대이란 정책을 최우선순위로 꼽는 미국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 정치인 중에는 이스라엘의 요구와 불만에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을 수 없는 이들이 적지 않다. 이런 정치인들 뒤에는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휘두르는 유대계 미국인들이 있기 때문이다. 공화당이나 민주당이나, 유대계 미국인들의 지지와 후원이 있어야 하는 이상, 그들이 반대할 만한 상황을 선택하기란 쉽지 않다. 게다가 현재 코로나19 상황과 경제 재건이라는 미국 사회의 무거운 문제들을 해결하면서, 중국 및 러시아와 전략 경쟁을 계속해 가야 하는 바이든 행정부로서는 국내 정치적 상황의 안정을 생각할 때에도 그들의 요구를 거스르는 결정을 내리기가 매우 부담스러울 것이다.

한국, 이란과의 동결자금 대안 모색을 위한 시사점

최종건 외교부 제1차관은 1월 6일 빈을 방문, 한국-이란 외교차관 회담을 통해 동결자금문제 등을 논의했다. ⓒ외교부

한편 우리 정부는 2002년 1월 4일부터 9일까지 최종건 외교부 1차관을 협상이 진행 중인 빈에 파견해 JCPOA 협상 대표들과 협의를 추진했다. 우리나라가 이란에 지불하기로 되어 있던 자금이 제재로 인해 동결되어 있는 문제를 해결할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였다. 2018년 트럼프 행정부가 이란에 대한 제재를 복원하면서 이란 중앙은행을 제재 명단에 올리는 바람에 이란에 대한 한국의 원유 수출 대금인 약 70억 달러(약 8조3000억 원)가 국내에 동결된 상황이다. 이 자금은 이란의 해외 동결자산 가운데 최대 규모라고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한국에 동결된 이란의 자금을 해제하는 것에 대해 미국의 반응은 호의적이지 못하다. 프라이스 미 국무부 대변인은 JCPOA 협상에서 다소 진전된 상황이 있다고 평가하면서도 제재 해제에 대해서는 매우 조심스러운 입장을 재확인했다. 그는 "제재 해제는 핵 합의 복원과 보조를 맞춰야만 이뤄질 수 있으며, 현재 진행 중인 협상의 핵심"이라며 "이 문제에 대해서는 모든 것이 합의되기 전에는 어떤 것도 합의되지 않았다"고 언급하였다. 이런 가운데 협상에 더 진전이 없으면 서방국가들은 1월 중에라도 협상 중단을 선언할 수 있다는 전망이 보도되고 있지만, 아미르압둘라히안 이란 외무장관은 서방측에 진전된 자세가 보인다며, 서방에서 '임시 합의'를 요구했다고 주장하기도 하여 협상을 둘러싼 전망이 매우 유동적인 상황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 우리로서는 우선 미국 바이든 행정부의 상황과 입장 변화를 예의 주시하고 긴밀하게 소통해야 한다. 그리고 미국과의 관계에 큰 부담을 주지 않는 선에서 이란을 비롯한 다른 국가들과도 협의를 통해 전체적인 흐름에 보조를 맞추려는 행보를 보여야 할 것이다. 너무 앞서가서도, 그렇다고 너무 수세적이어서도 곤란할 것이다. 너무 앞서가다가는 미국과 갈등을 빚을 수 있고, 너무 수세적으로 가다가는 우리가 가진 카드를 사용하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조심스러우면서도 적극적으로, 그리고 유연한 외교의 기술이 절실한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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