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핵보유국 5개국, 핵전쟁·군비경쟁 방지
공동성명의 의미와 한계

SUMMARY

  • 2022년 1월 3일 핵무기를 보유한 미국, 중국, 러시아, 프랑스, 영국 5개국이 핵전쟁 및 군비경쟁 방지를 위한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 최근 어지러운 국제 정세에서 핵전쟁 반대 선언을 한목소리로 표명한 것은 의미있는 성과다.
  • 하지만 비판의 목소리도 커, 공동성명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는 5개국의 실질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핵보유국 5개국의 공동성명 발표

2022년 1월 3일, 핵무기를 보유한 미국, 중국, 러시아, 프랑스, 영국 5개국(이하 핵보유국 5개국) 정상들은 핵전쟁 및 군비경쟁 방지를 위한 공동성명(Joint Statement of the Leaders of the Five Nuclear-Weapon States on Preventing Nuclear War and Avoiding Arms Races)을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핵보유국 간의 전쟁 회피와 전략적 위험 감소를 우리의 최우선 책임으로 간주한다"고 밝히며 핵무기를 방어 목적으로만 사용하고, 핵확산금지조약(NPT) 의무를 계속 이행할 것이라고 약속했다.

NPT 가입국들은 5년마다 NPT 평가회의를 연다. 사진은 2015년에 열린 제9차 NPT 평가회의 모습이다. ⓒFlickr

미국, 중국, 러시아, 프랑스, 영국 5개국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P5)으로, NPT 제9조 3항에 명시된 '1967년 1월 1일 이전에 핵무기와 그 밖의 핵폭발 장치를 제조하고 또 폭발시킨 나라'들이다. NPT는 이 5개국만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고 있다.

NPT 가입국들은 5년마다 NPT 평가 회의를 열고 조약 이행상황을 점검한다. 보통 핵보유국 5개국은 이 회의에서 공동성명을 발표해왔다.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해 1월 4일로 예정됐던 제10차 NPT 평가 회의는 미뤄졌으나 공동성명은 예정대로 발표했다.

한목소리로 핵전쟁 반대 표명은 의미있는 성과

주요 외신들은 "어지러운 국제 정세 속에서 발표된 의미 있는 성과"라며 5개국의 공동성명을 긍정적으로 보도했다. 최근 국제 정세는 전례 없는 긴장 상황에 놓여있다. 우크라이나를 둘러싼 러시아와 미국·유럽 국가들의 관계, 중국과 미국의 관계는 악화됐고, 이란의 핵 합의 복원도 지지부진한 상태다. 북한도 극초음속 미사일, 탄도 미사일 등을 계속 발사하고, 추가 핵실험 우려 또한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처럼 냉전 종식 이후 지금이 세계의 평화와 안정을 수호하기 가장 힘든 시기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좋지 않은 상황에서 공동성명 발표는 의미가 크다는 평가다.

1985년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소련 대통령은 제네바에서 정상회담을 갖고 핵전쟁은 안 된다고 명시한 공동성명을 냈다. ⓒWikimedia

특히 핵보유국 5개국이 "핵전쟁에 승자는 없으며, 결코 일어나서는 안 된다"며 한목소리를 냈다는 것이 이례적이라는 평이다. '핵전쟁 반대' 선언은 1985년 제네바에서 열린 로널드 레이건과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정상회담에서 시작됐다. 미국과 러시아, 중국은 이미 여러 차례 핵전쟁 반대에 합의해왔지만, 이들만큼의 엄청난 핵전력을 갖지 못한 영국과 프랑스는 이를 거부해왔다. 특히 프랑스는 '침략 국가에 대해 전술적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를 보유한다'는 핵 정책을 갖고 있어 가장 크게 반대했다. 이런 국가들이 공동성명에 합의한 것은 상당히 중요한 진전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 지난 공동성명들이 이란과 북한 등 핵 개발 국가를 규탄하는 데 주로 초점을 맞춰왔던 반면, 이번 성명은 핵보유국 5개국이 핵보유국으로서의 책임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강조했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점이다. 핵군축 전문가들은 핵보유국 5개국의 공동성명이 다가오는 NPT 평가 회의를 앞두고 핵비확산과 핵군축에 추진력을 얻는 출발점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말뿐인 허상에 불과하다는 비판, 실질적인 노력 필요

하지만 공동성명이 말뿐인 허상에 불과하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높다. 5개국은 성명에서 "양자 및 다자간 비확산, 군축, 군비 통제 협정 및 약속을 유지하고 준수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조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지난 10년간 수많은 군비 통제 협정이 폐기됐다. 미국은 2002년 탄도탄 요격 미사일(ABM) 금지협정, 2019년 중거리 핵전력(INF) 조약에서 탈퇴했다.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아직 유효한 군비 통제 협정은 2026년에 만료되는 신 전략무기감축조약(New START) 뿐이다.

핵보유국 5개국은 모두 핵무기 현대화와 확장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하고 있다. ⓒshutterstock

게다가 이들 핵보유국은 모두 핵무기를 감축하기는커녕 핵무기 현대화와 확장에 열을 올리고 있으며, 다양한 핵 사용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미국의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의 핵무기를 현대화하는 데 6,340억 달러를 지출한다고 발표했다. 중국도 핵무기 증강에 속도를 내면서 강력한 '3대 핵전력(ICBM, SLBM, 전략폭격기)'을 구축하고 있다. 미국 국방부는 중국이 2027년에는 700개의 핵탄두를 확보하고, 2030년이 되면 최소 1,000개에 이르는 핵탄두를 갖게 될 것이라고 전망한 바 있다.

또 핵무기를 방어 목적으로만 사용한다면, 핵보유국들은 '핵 선제 불사용(NFU, No First Use)' 원칙에 따라야 한다. 침략 국가가 먼저 핵 공격을 하지 않는 한 선제 핵 공격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하지만 지금까지 NFU를 대외적으로 천명한 나라는 핵보유국 5개국 중 중국뿐이다. 미국의 바이든 정부도 NFU를 공약으로 내걸었지만, 최근 공개한 핵태세검토보고서(NPR)에서 NFU를 포함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과 동맹국의 이익을 지켜야 하는 극단적인 상황에서는 핵 사용을 검토하겠다는 것이다. 심지어 러시아는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매일같이 서방 국가에 핵 위협을 가하고 있다.

또 다른 전문가들은 오늘날 핵무기를 보유하고, 개발하고 있는 국가가 이들 핵보유국 5개국만이 아니기에 공동성명에 신빙성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인도, 파키스탄, 이스라엘 등의 국가는 NPT에서는 인정하지 않지만 치명적인 핵전쟁을 일으킬 수 있다고 여겨지는 비공식 핵보유국이다. 5개국 사이에서 핵무기 통제나 군축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 하더라도, 비공식 핵보유국의 참여 없이는 불완전한 약속이 될 수밖에 없다.

스톡홀름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공동성명이 단지 수사로만 끝나지 않으려면 핵보유국들의 근본적인 기조 변화, 타협 의지, 진지한 노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NFU 정책을 채택하거나, 핵 충돌로 확대되는 위험을 줄이기 위한 위기 커뮤니케이션 채널을 여는 등 직접적인 계획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핵 위협으로 인해 인류는 새로운 핵질서의 시대에 접어들었다"고 말했다. 사실상 공동성명의 의미가 퇴색된 상황이다. 이 상황을 안정시키고, 공동 성명의 약속을 지키며 다른 국가들을 설득하기 위해서는 핵보유국 5개국이 핵무기 감축과 폐기 문제에 대한 구체적인 실천 약속을 국제사회에 제시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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