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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T 너머, 핵비확산체제의 미래

2022년 8월 1일부터 26일까지 뉴욕 UN 본부에서 제10차 핵확산금지조약(NPT) 검토 회의가 열렸다. 어려운 정세 속에서 위기 상황에 대한 새로운 돌파구를 찾을 수 있길 기대했지만, 한 달간의 논의에도 불구하고 러시아의 반대로 최종 선언문을 채택하지 못한 채 회의가 마무리됐다. 지난 2015년에 이어 2회 연속 최종 선언문 채택에 실패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기에, NPT를 기반으로 한 현재의 핵비확산체제가 약화된 것 아니냐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는 시점에서 향후 핵비확산체제의 미래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러시아의 반대로 최종 선언문 채택 불발

1970년 발효된 NPT는 핵무기와 관련 기술의 확산을 방지하고, 핵군축을 달성하기 위한 국제조약으로 현 핵비확산체제의 핵심이자 기본 기둥이다. 191개 당사국은 NPT 제8조에 따라 5년마다 조약의 운영 및 이행을 검토하는 NPT 검토 회의를 개최한다. 핵군축과 핵비확산,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 등 조약의 이행과 결과를 평가하고 다음 5년간의 행동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다. NPT 당사국 간의 합의된 결과는 최종 선언문으로 발표된다.

하지만 국제질서가 혼란에 빠지면서 합의도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북한은 핵무기를 확장·다양화하고 있고, 미국과 이란의 핵 합의 복원도 녹록지 않다. 주요 강대국들은 매년 천문학적인 비용을 지출하면서 무기를 현대화하면서 새로운 군비 경쟁을 지속하고 있다. 무엇보다 회의를 앞두고 가장 큰 문제는 단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핵 위협이었다. 러시아로 인해 유럽은 군축과는 반대의 길을 걷고 있다. 비핵보유국인 스웨덴과 핀란드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가입하면서 무기 구매 등을 안보 정책의 중요한 부분으로 삼겠다며 NPT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고 있는 상황이다.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이 제10차 NPT 검토 회의에서 연설하고 있다. ⓒUN Photo/Loey Felipe

이번 회의에서 많은 당사국은 우크라이나 자포리자 원전의 상황과 핵 시설의 안전과 보안에 대한 우려를 표하며, 최종 선언문에 이를 반영하고 러시아가 점령한 시설을 우크라이나에게 반환하도록 촉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가 NATO 국가들의 지원을 받아 오히려 발전소를 폭격하고 있다며 반격했다.

대부분의 NPT 당사국들은 최종 선언문에 강력한 비판의 어조를 담기를 원했지만, 합의 과정에서 온건한 어조로 조정됐다. 그러나 그마저도 러시아가 당사국 간의 입장 균형을 나타내지 않는 정치적인 선언문이라며 자포리자 원전과 관련된 모든 문장을 삭제하기를 요청했고, 결국 최종 선언문 채택에 실패했다.

2회 연속 최종 선언문 채택 실패로 NPT와 비확산체제 약화 우려

지난 2015년에 이어 이번에도 최종 합의가 불발되면서, NPT를 기반으로 한 기존 비확산체제가 약화된 것 아니냐는 우려가 크다. 다자간 합의 기반 체제, NPT 검토 과정, 대규모 군비 통제 등의 미래가 불투명해졌다는 것이다. 사실 NPT에 대한 우려는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다. 우선 많은 국가가 NPT를 지지하고, 그 필요성에 대해 보편적으로 합의하고 있지만, 조약의 원칙인 핵군축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아 공허한 조약에 불과하다는 지적이 계속돼 왔다.

NPT의 기본은 상호 간의 합의다. 비핵보유국들은 궁극적으로 핵보유국들이 핵군축을 해줄 것이라 믿고, 이 약속에 대한 대가로 핵무기 개발과 소유를 포기한다. 하지만 NPT가 발효된 지난 50년간, 핵보유국들은 비축한 핵무기의 수를 줄이거나 핵무기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모습을 전혀 보여주지 않았다.

이렇게 되니 비핵보유국들이 핵보유국에 가지는 불만은 점점 높아지고 있다. '핵무기 제거'라는 NPT의 목표에 조금도 진전이 없다는 것이다. 핵보유국 5개국은 현재 지정학적 안보 환경이 군축에 대한 노력을 방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군축의 의무보다 자국의 안보가 먼저라는 것이다. 이러한 입장 차는 NPT 체제를 약화하는 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핵 비확산을 실천하기 위한 우선순위를 정하는 것에 있어서도 당사국들 간의 의견 차이가 크다. 이번 제10차 NPT 검토 회의에서도 유럽 및 서방 국가들은 러시아의 핵 위협에 국한해서만 비판했던 반면, 대부분의 개발도상국과 오스트리아, 아일랜드 등은 핵 사용에 대한 모든 위협을 중요하게 여겼다.

드론 등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핵무기와 일반 무기 사이의 경계가 모호해지면서 NPT에도 관련 대처 방안에 대한 논의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shutterstock

또 NPT 기반의 비확산체제는 변화하는 새로운 핵 시대에 발맞춰가지 못하고 있다는 비판도 받는다. NPT가 처음 발효된 1968년은 원자력 기술을 비롯한 과학기술이 초기 단계에 있었다. 하지만 오늘날 우주 탐사 기술과 미사일 방어, 극초음속 무기 등의 무기 기술 발전, 인공지능 기술의 등장 등은 핵무기와 일반 무기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들고 있다. 드론이나 사이버 공격의 기술 발전으로, 핵보유국이나 비핵보유국 모두는 NPT를 위반하지 않고도 적에게 돌이킬 수 없는 피해를 줄 수 있다.

전문가들은 NPT 검토 회의에서 아직까지 이런 문제들이 깊게 논의되지 않았다고 지적한다. 현재 NPT는 냉전 시대의 언어를 그대로 따르고 있으며, 급변하는 안보 환경과 과학기술의 발전에 대한 대처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앞으로 NPT는 현재의 기술적 진보와 함께 '억지력'이라는 개념에 대해 새롭게 검토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앞으로 NPT와 비확산체제가 해야 할 일

2022년 6월 21일부터 23일까지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핵무기금지조약(TPNW)의 제1차 당사국 회의가 열렸다. TPNW는 2021년 1월 22일에 발효되었으며, 핵무기 관련 활동에 대한 포괄적인 금지를 요구하는 조약이다. ⓒUNIS Vienna

그렇다면 앞으로 NPT와 핵비확산체제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먼저 근본적으로 NPT 검토 회의가 '합의된 최종 선언문'의 형태로 일시적으로만 합의를 보는 공허한 외교 의식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 핵보유국이 의미 있는 조치를 하지 않더라도, 비핵보유국이 주도권을 잡고 군축 관련 의제들을 계속 추진해야 한다고 말한다. 비핵보유국들이 나서서 대화를 촉진하고, 의무를 지키도록 압력을 넣으며, 핵우산 대상 국가의 경우 핵무기에 대한 의존도를 줄이는 방법을 모색하는 등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2021년 1월 22일 발효된 핵무기금지조약(TPNW)과 같이, NPT 외의 핵 관련 조치들과 함께하며 비확산체제를 더 강화할 수도 있다.

※ TPNW : 모든 핵무기의 개발·실험·생산·보유·사용뿐 아니라, 핵보유국의 다른 나라들에 대한 '핵우산' 제공까지도 금지한 최초의 국제조약

하지만 의미 있는 행동을 해야 하는 것은 결국 핵보유국들이다. 이들이 세계 안보를 어지럽히고, 핵 위협을 계속하는 한 추가적인 핵군축의 가능성은 희박하다. 핵보유국들은 NPT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인류의 생존'이라는 공동의 이익을 위해 구체적인 군축 계획을 제시해야 한다.

한편 이번 제10차 NPT 검토 회의의 결과는 좋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많은 전문가들이 한 달간 진행된 토론과 협상이 아예 의미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평가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정세를 감안할 때, 합의에 도달하기는 당연히 어려웠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러시아를 제외한 NPT 당사국들은 같은 의견을 공유했다. 특히 핵비보유국들은 핵 위협에 맞서 단합과 서로에 대한 신뢰가 그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임을 인식했다.

안토니오 게테레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번 검토 회의를 시작하면서 "인류는 단지 하나의 오해, 하나의 오산으로 핵 소멸을 앞당길 수 있다"며, "신뢰와 상호 존중 없이는 평화가 이루어질 수 없다"고 강조했다. 결국 NPT의 핵심은 서로 간의 믿음이다. 인류가 서로 타협과 협력으로 이 위기를 잘 극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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