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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2회차', 회귀물 쏟아지는 요즘 콘텐츠

"나 다시 돌아갈래!!!" 영화 <박하사탕>(1999) 주인공 영호(설경구)는 부패와 죄로 점철되어 온 삶을 후회하여, 달려오는 기차에 몸을 던지며 절규한다. 이처럼 과거로 돌아가 인생을 2회차로 시작하고 싶다는 욕망은 웹툰과 웹소설을 통해 구현되고 있다. 바로, '회귀물'이다. 주인공은 자신의 기억과 그간 축적한 능력을 간직한 채 과거로 돌아가 복수하거나 인생을 바꾼다.

재벌집 막내아들은 회귀물 드라마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JTBC

최근 웹툰과 웹소설에서 '회귀물'이 주류 문화로 웹툰 시장을 휩쓸고 있다. 지난해 웹소설 플랫폼 네이버 시리즈의 종합 순위 10위 중 6개, 카카오페이지의 종합 순위 10위 중 5개가 회귀물이었다. 올해 초 인기를 끌었던 JTBC 드라마 '재벌집 막내아들'이 그중 하나다.

동명의 웹소설이 원작인 이 작품은 순양그룹이라는 재벌가에서 머슴처럼 회장 일가의 갑질을 받아주고 더러운 뒤처리를 하던 '윤현우'가 토사구팽당해 죽고, 순양그룹 창업주 진양철의 막내 손자 '진도준'으로 '회귀'해 순양그룹을 집어삼키기 위해 움직이는 회귀물이다. 그동안 재벌의 비리를 다룬 드라마는 많았지만, 이 드라마가 흥행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회귀라는 설정이 한몫했을 것이다. 왜 다들 회귀물에 열광할까?

회귀물에 열광하는 이유, '이번 생은 망했어'

대중문화인 웹소설과 웹툰에는 독자의 욕망이 적극적이고 빠르게 반영된다. 회귀물 유행은 '억울함과 후회'라는 현재 우리 사회의 지배적 정서를 반영한다. 소위 말하는 '이생망(이번 생은 망했어)'과도 일맥상통한다.

시원시원한 회귀물의 저변에는 청년들의 불안하고 절망스러운 심리가 들어있다. ⓒshutterstock

경기 침체와 저성장 국면에서 청년들의 불안은 갈수록 커진다. 농담 같지만, 농담 같지 않은 단어 '이생망'에는 아무리 노력해도 달라지지 않는 현실을 향한 허무함이 담겨있다. 캄캄한 미래 앞에서 절망하는 청년들은 현실에 대한 결핍을 회귀물이라는 판타지로 채운다.

최근 부동산과 가상화폐 대란으로 좌절한 MZ(밀레니얼+Z세대)의 심경을 대변한다는 분석도 나온다. 현재를 부정하고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투기를 한다면 '영혼까지 끌어올려' 성공할 수 있다는 MZ세대의 바람이 깊게 담겨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정보독점'이다. Z세대는 인터넷과 친숙하므로 정보 수집에 강하고, 정보 수집을 잘하는 사람이 곧 유능한 사람이다. 회귀물 주인공은 인생 1회차를 살았기 때문에 쌓아 놓은 데이터가 풍부하고, 정보를 이용해 인생을 역전한다. 마치 인생이 잘못 끝났을 때 저장해 놓은 데이터를 가져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게임과 같다.

재밌게 볼 수 있는 회귀물, 뭐가 있을까?

네이버 웹소설 '내 남편과 결혼해줘'와 '광마회귀' 표지. ⓒ네이버 시리즈

재벌집 막내아들로 회귀물의 '사이다' 맛을 본 당신에게, 장르별로 재밌게 볼 수 있는 회귀물을 추천한다. 우선 네이버 시리즈의 현대 로맨스 '내 남편과 결혼해줘'와 무협 판타지 '광마회귀'가 있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는 네이버 웹툰으로 나왔으며, 드라마화도 진행 중이다.

'내 남편과 결혼해줘'의 주인공 강지원의 삶은 비극이'었'다. 10년 동안 남편과 시댁의 학대에 가까운 구박을 받다 암 말기를 판정받고, 절친이라 믿었던 소꿉친구는 남편과 바람을 피운다. 소꿉친구와 남편이 바람피우는 걸 본 직후, 남편에게 살해당한 지원은 10년 전으로 회귀하고 자기 삶을 바꾸려고 고군분투한다. 또 제목 그대로 절친 아닌 절친이 전남편과 결혼하도록 유도한다.

'광마회귀'의 주인공 이자하는 광기 가득한 성격으로 갱생 불가능한 무인들을 무자비하게 죽여 무림공적 사대악인 중 하나인 '광마'에 올랐다. 광마 이자하는 천마신교의 보물 천옥을 훔쳐 달아나다 실패하고, 천옥을 삼켜 절벽에 투신한다. 투신 도중 이자하는 천옥과 함께 평범했던 20대 초반 때로 회귀하고, 자신만의 문파 하오문을 세워 영향력을 넓혀간다.

카오페이지 웹소설 '악녀는 마리오네트'와 '데뷔 못하면 죽는 병 걸림' 표지.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카카오페이지의 웹소설 '악녀는 마리오네트'와 '데뷔 못하면 죽는 병 걸림'의 주인공들은 회귀한 뒤, 제각각의 이유로 노력하고 살아남는다. '악녀는 마리오네트'는 웹툰으로도 나왔으며, 유명 배우 한소희와 차은우, 이수혁을 캐스팅한 호화로운 광고로 화제가 됐다. '데뷔 못하면 죽는 병 걸림'은 누적 조회 수 2억 8천만 회를 넘기고, 연재되는 월~금요일 모두 인기 검색어 10위 안을 계속 유지하고 있다.

'악녀는 마리오네트'의 주인공 카예나 힐은 아름답지만 사치스러운 악녀로, 폭군 남동생의 황제 자리를 얻기 위한 꼭두각시 인형(마리오네트)로 이용당하고 미치광이 남편에게 살해당한다. 한국에서 환생한 그녀는 직장인으로 지내다 자신에게 악감정을 가진 남자에게 살해당하고, 또다시 카예나로 회귀한다. 카예나는 남동생에게 벗어나 자유를 얻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데뷔 못하면 죽는 병 걸림'의 주인공 류건우는 4년 차 아홉수 공시생으로 시험에 떨어져 술을 먹은 다음 날, 박문대라는 낯선 남자에 빙의돼 3년 전으로 회귀한다. 그런데 그의 눈앞에 경고창이 게임 시스템처럼 뜬다. '데뷔가 아니면 죽음을' 1년 안에 아이돌로 데뷔하지 못하면 죽는다는 것이다. 다급해진 류건우는 이전 생에 데이터 팔이로 익힌 아이돌 지식을 활용해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참여한다.

이외에도 다양한 소재와 시대 배경을 활용한 회귀물 작품이 등장하고 있다. 회귀물은 젊은 세대뿐만 아니라 중장년을 포함한 기성세대 모두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모두 한 번쯤 '과거에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상상해보곤 하니까 말이다. 마음 한편에 자리잡은 미련을 효자손처럼 긁어주는 회귀물은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는 K-문화의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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