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코로나19 장기화로 인해 국제 유가가 연일 바닥을 치고 있다. 한때는 재고 처리의 부담으로 서부텍사스유(WTI) 가격이 마이너스를 찍는 모습도 보였다. 유가가 떨어지면 가장 타격을 받는 나라는 사우디아라비아, 이라크, 아랍에미레이트(UAE) 등 중동 국가이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걸프 왕정국가들의 재정은 대부분 원유수출에 의존하고 있어 유가하락은 국가 재정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UAE는 세계 5위권의 원유 수출국이었지만, 석유 위주의 국가 경제 구조를 탈피하고자 석유 의존도를 낮추면서 두바이와 아부다비를 필두로 야심찬 경제개발계획을 추진해 경제 다변화를 이뤄냈다. 이 과정에서 경제발전과 인구증가로 전력수요가 증가할 것에 대비해 2009년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기에 이르렀다. UAE 원전사업은 우리나라의 첫 원전 수출로 건설, 설비 및 핵연료까지 아우르는 프로젝트였다. 최근 UAE의 첫 번째 원전인 바라카(Barakah) 원전 1호기가 운영허가를 받았다. 이 과정에서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이하 KINAC)이 수행한 핵연료 국제운송 시 물리적방호 규제 노력을 짚어본다.

KINAC, 핵연료 수출의 물리적방호를 담당하다

원자력발전소는 안전성과 경제성을 두루 갖춘 고도의 기술이 집약된 중요 산업물이다. 종합 기술의 집약체인 원자력발전소의 해외수출은 수출국의 기술 역량을 대외적으로 인정받는 매우 중요한 계기이며 국내 관련 산업에 대한 긍정적 파급효과를 가져온다. 따라서 우리나라가 지난 2009년 UAE 원전 4기를 한국형 차세대 가압경수로형 원전(APR1400)으로 건설하는 사업을 수주한 것은 고무적인 일이었다. 우리나라는 2012년 7월 UAE 수도 아부다비 서쪽 270㎞ 지역에 건설을 시작했다. 마침내 지난 2월 17일 UAE 바카라 원전 1호기가 운영 허가를 받아 역사적인 상업 운전이 눈앞으로 다가왔다.

UAE 바라카 원전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과 UAE 각료들의 모습. 출처: 청와대

우리나라는 이미 1990년대부터 원전 관련 기술이나 장비를 수출해왔으나 원자력발전소를 수출하는 것은 UAE 건이 최초였다. 발전소 건물 외에도 원자로용기, 냉각재펌프, 계측기 등의 장비부터 운영에 필요한 소프트웨어까지 일체를 우리나라가 책임졌다. 이에 더해 사용하는 핵연료와 운영인력의 교육까지 포함하는 대대적인 사업이었다.

이 과정에서 정부, 한국전력공사, 한국수력원자력(주) 등 많은 기관이 노력을 쏟았고, 그중에서 KINAC은 핵비확산 차원에서 수출입통제, 핵안보 차원에서 물리적방호 규제업무를 수행했다. 물리적방호는 우리나라의 핵연료를 UAE로 운송하는 과정에서 특히 중요했다. 이전까지 핵연료 운송은 외국에서 핵연료의 원료를 국내로 수입하거나, 대전의 한전원자력연료(주)에서 생산한 신연료를 국내 각지의 원자력발전소로 운송하는 것이 전부였다. 이 과정에서 KINAC은 국내에서 일어날지 모르는 탈취 등의 위협을 방지·대응하기 위한 원자력사업자의 물리적방호 체계를 검사하는 규제를 수행해왔다. 그러나 UAE 바라카 원전 1호기로 핵연료를 운송하는 것은, 수출국인 우리나라가 수입국인 UAE 영해까지 여러 경유국과 공해상을 거치는 국제운송과정에서 핵연료에 대한 방호를 책임져야 하는 최초의 사례였다.

KINAC 이정호 선임연구원은 핵물질에 대한 물리적방호 규제업무 담당자로서 수입국인 UAE에 물리적방호의 책임이 인계될 때까지 핵연료를 안전하게 운송하기 위해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특히 물리적방호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어떻게 정부, 원자력사업자, 규제기관이 나누어 이행할 것인가가 큰 고민거리였다고 한다. 또한 핵연료 운송 과정에서 여러 국가와 공해를 거치게 되므로 관련 국제조약을 검토하는 것이 물리적방호 규제 수립의 첫 단계였다. 그는 '핵연료를 포함하는 방사성물질'에 대한 국제적 규약과 협약을 확인하는 것이 우선이었다고 했다. "핵물질 운송은 유엔위험물운반권고안(UN RTDG)에 Class 7로 별도로 분류되어 있고 IAEA는 이에 대한 방호지침(INFCIRC/225/Rev.4)을 별도로 마련해 놨다"라고 설명했다.

험난했던 핵연료 국제운송을 위한 국제공조

우리나라는 우리나라는 2016년 2분기부터 UAE에 핵연료를 공급하기로 했다. 우리나라에서 UAE까지 직선거리로만 따져도 7,000km 이상인 거리를 해상으로 운송하는 건 만만한 일이 아니었다. 개정핵물질방호협약(A/CPPNM)의 제4조 '국제운송 핵물질의 방호보장을 위한 당사국의 책임' 규정에는 국제운송 시 핵물질 방호책임은 국가 간 상호 협의에 따른다고 규정하고 있다. 결국 운송과 관련한 모든 국가와 우리나라가 직접 협의해야 한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핵물질 운송에 관한 사항은 보안을 이유로 다른 나라의 사례를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경험이 전무한 우리로서는 국제협약의 해석부터 다양한 정치적·외교적 문제까지, 각각의 이슈를 정리하는 데만 수개월이 걸렸다고 했다.

핵연료를 운송하는 데는 수많은 사람과 기관의 협조가 필요하다. 출처: KINAC

핵연료 운송은 핵연료만 따로 전용 선박에 실어 보내면 된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그리 쉬운 문제가 아니다. 먼저, 핵연료는 운반할 선박을 결정하는 것부터 쉽지 않다. 국제적으로 활동하는 해적이 운반선에 승선하는 것과 같은 물리적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 일정 규모이상의 대형 운송선을 이용해야 한다. 이러한 사항들을 고려하여 우리나라 해운사의 컨테이너선을 이용하여 운송하기로 했다. 다음으로는 컨테이너선이 경로를 이동하는 동안 여러 국가의 항구들을 거치게 되어 경유국들과의 협조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이 때 염려되는 것은 경유국 입장에서 방사성물질인 핵연료가 자국으로 들어오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었다. 국제협약에는 핵물질 운송 전에 경유국에 협조를 구하고, 사전에 통보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해운사가 경유국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 경유할 수밖에 없다면 경유국의 협조를 구할 절차와 방법이 현안이 되었다. 이 과정에서 설상가상으로 당초 운반을 의뢰하려했던 한진해운이 파산하면서, 현대상선으로 해운사를 변경해야했다. 당초 우리나라는 중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를 경유하는 경로를 설정하였으나 해운사를 현대상선으로 변경하면서 경로에 대만이 포함되었다. 하지만 대만은 국제법상 국가 지위를 얻지 못해 핵연료 운송에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하여 경유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관련 정부부처, 원자력사업자, 해운사와 경유국을 결정한 후 다음 단계는 이들 국가들에 방호 협조를 요청하는 일이었다. 각 나라에 외교공문을 통해 협조를 요청하였고, 중국은 홍콩항을 제외하고는 안전상의 이유로 중소항구로의 핵물질 입항을 거절해 경유 항구를 조정했다. 그런데 원자력사업자와 해운사가 제안한 경유국 중 말레이시아는 개정핵물질방호협약(A/CPPNM) 당사국이 아니기 때문에 논란이 됐다. KINAC과 원자력안전위원회의 검토결과, 말레이시아는 국제해사기구(IMO)의 '국제항해선박 및 항만시설 보안규정(ISPS Code)'에 가입하고 있어 IAEA 등 국제사회에서는 핵물질방호협약과 동등한 수준의 방호조치가 핵물질에 적용된다고 인정하므로 경유를 허락했다.

각 국과의 협상이 순조롭게 이뤄지는 듯했지만 핵연료 1차분 선적을 하기로 한 2017년 1월 24일을 단 1주일 앞두고 싱가포르 환경규제청에서 문제를 제기했다. 싱가포르는 개정핵물질방호협약의 내용을 들어 미당사국인 말레이시아를 경유하는 한국의 핵물질 운송을 허가해 줄 수 없다는 것이었다.

당시 일본 출장 중이던 이 선임연구원은 늦은 저녁, 싱가포르의 통항불가 소식을 전해들었다. 말레이시아 경유에 대해서는 KINAC이 충분히 검토한 건이었고, 국가 책임의 핵연료 운송 첫 사례가 성공적으로 이행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대응하고자 했다. 이 선임연구원이 말레이시아 경유에 대한 검토결과를 정리해 싱가포르측 담당자에 설명하기로 했다. 그러나 통항을 거부한 싱가포르측 담당자 연락처를 확인하기 어려웠고, 결국 SNS까지 동원해 찾아냈다. 그리고 그간 검토한 IAEA와 IMO의 여러 규정들을 이메일로 보내 설명하며 우리나라의 핵물질 통항허가 재고를 요청했다. 수많은 메일이 오고갔고 끈질긴 설득 끝에 운송 시작 하루 전, 싱가포르의 승인을 받아냈다. 운송 후 당시 한전원자력연료 사장으로부터 직접 감사인사를 받을 정도로 긴박한 상황에서 KINAC의 역량을 또 한 번 발휘한 에피소드다.

핵연료 운송에는 특별한 준비와 법률제정까지 필요해

핵연료를 운반하기 위해서는 테러 등 위협이 없는지 점검하고 안전을 정비한다. 출처: KINAC

핵물질은 다른 화물과 함께 운송하게 되면 안전에 대한 문제가 가장 큰 이슈일 수 있다. 이번 핵연료 국제운송에서 안전과 관련하여 어떤 특별한 조치가 이루어졌을까? 이 선임연구원은 "원자력안전위원회는 핵연료 운송 시 용기 설계부터 이동경로까지 모든 것을 원자력안전법 등 관련 법을 통해 규제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용기의 소재부터 잠금장치, 봉인 등 소소하지만 중요한 부분 하나하나를 규제에 만족하도록 설계하는 데에만 수년이 필요했을 정도다. 또한 실제 핵연료를 운송하기 전에 빈 용기만 배에 실어 두 번에 걸쳐 모의 운송을 해 봤을 정도로 신중을 기했다. 해상 운송에 관해선 국제적 이슈가 다양하게 얽혀있다. 테러 등 위협도 신경 써야 하고 주변국과의 관계도 확인해야 한다. 운송 중 사고에 대한 국가의 책임은 IAEA의 개정 핵물질방호협약(A/CPPNM), 국제해사기구(IMO)의 해양법에 관한 국제연합협약 등에 수출국의 책임, 운송 선박이나 항공기의 기국 책임, 운반경로상의 연안국 책임 등이 복잡하게 얽혀있다. 이러한 점 때문에 개정핵물질방호협약에서는 국제운반 핵물질의 방호에 대한 책임은 수출국에 있다고 규정하고, 수출허가 전에 수출국이 관련 국가들과 협의하도록 하고 있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생산한 핵연료라고는 해도 원료물질은 다른 나라에서 수입한 것이므로 미국 등 원료 생산국과의 원자력협정 또한 고려해야 해서 따져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 선임연구원은 이번 국제운송 과정에서 쌓은 경험과 지식을 통해 국내 법·제도를 보완해 가는 것이 중요했다고 밝혔다. 특히 핵연료 수출은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있고 국제적으로 워낙 민감한 물질의 운송이기 때문에 수많은 국제 규정을 감안해 국내법도 신중하게 재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는 얼마 전 사회적 이슈가 되었던 폭스바겐의 배기가스 조작사건을 사례로 들었다. 우리나라는 이러한 사건을 규제하고 처벌하기 위한 대기환경보전법을 제정하고 있지만, 규제조항과 벌칙조항이 미비하여 처벌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러한 사례를 타산지석으로 삼아 핵물질을 국제운송하면서 배우게 된 우리나라 규제 제도의 개선사항을 반영하여 법·제도의 완결성을 제고해가야 한다고 말했다.

현 정부가 지난해 건설 위주였던 원전 해외 수출을 운전정비, 수명연장, 해체 등 전주기를 아우르는 수출전략으로 확대함에 따라 다양한 수출 관련 이슈가 계속 발생할 수 있다. 이 선임연구원의 말처럼 관련 법령 및 제도에서 논리적 허점이 드러나지 않도록 철저하게 수립되어야 하고 거기에 KINAC이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함은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