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세 차례에 걸쳐 개최된 남북 정상 회담은 남북 관계뿐만 아니라 북미 관계를 개선하고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물꼬를 틀어주었다. 2년 여간 이어지던 비핵화 논의는 2019년 10월 스웨덴 스톡홀름 북미 실무 협상 이후 차기 협상 날짜를 확정하지 못하고 중단된 상태이다.

비핵화 논의가 2020년 초를 기점으로 전 세계에 퍼진 코로나19의 영향을 받는 것은 물론,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 정책이 '인내 외교'로 전환되었다는 신호가 포착되고 있다. 올해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를 비롯해 이러한 여러 변화는 비핵화 논의가 빠른 시일 내에 재개되기 어려우리라는 예측을 낳는다. 이번 호에서는 2018, 2019년에 걸친 북한의 비핵화 흐름과 2020년 상반기의 동향을 살펴보고자 한다.

비핵화, 개념 설정에서부터 협상까지 쉽지 않은 과정

핵무기를 자국의 체제 유지 수단으로 인식하는 북한은 국제사회의 회유와 압박에도 불구하고 핵무기 개발을 지속적으로 추진해 왔다. 2017년에는 수소폭탄으로 추정되는 역대 최대 규모의 6차 핵실험을 실시했으며, 신형 탄도미사일인 화성-15형을 시험 발사하고는 '핵무력 완성'을 선언했다. 이러한 북한의 도발에 대응해 미국 트럼프 행정부 내에서는 북한에 대한 군사적 대응의 필요성이 대두되는 등 북핵 문제는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북핵 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원칙하에 북한과 미국의 중재자 역할을 하면서 적극적으로 노력해 왔다. 그 결과, 2018년 2월 평창올림픽을 계기로 그간 단절되었던 남북대화가 재개되고, 2018년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이 개최되어 남북 관계의 전면적 개선, 군사적 긴장 완화 및 전쟁 위협 해소, 완전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을 위한 노력에 합의하기에 이르렀다.

2018년 6월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으로 북핵문제에 대한 평화적 해법을 국제적으로 논의하게 되었다. 이후 9월 19일 북한은 '남북평양공동선언'을 통해 동창리 엔진시험장과 미사일 발사대를 영구 폐기하고, 미국 측의 상응조치에 따라 영변 핵시설의 영구 폐기와 같은 추가 조치를 취할 용의가 있음을 표명하였다. 그러나 2019년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개최된 2차 북미 정상회담은 비핵화의 범위 및 제재 해제 방식에 대한 양국의 이견으로 합의문을 채택하지 못했다.

전문가들은 "협상의 기본 출발점은 개념 정의이나, 북미 간 비핵화 협상은 '완전한 비핵화'(Completed Denuclearization)라는 용어에만 합의한 상태에서 진행되었다"며 그 의미에 대해서는 누구도 명확하게 설명하지 않았다고 평가했다. 협상 초기 미국의 목표는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폐기)인 반면, 2017년 핵 보유국임을 선언한 북한으로서는 핵무기를 포기하지 않는 선에서의 비핵화를 생각하고 있었을 수 있다는 것이다. 과거 북한의 발언을 보더라도 모든 핵무기 프로그램을 없앤다기보다는 핵 보유국으로서 기존의 핵무기 숫자를 줄이거나 이후의 핵활동을 동결하는 수준의 입장으로도 추측해 볼 수 있다.

백승혁 KINAC 연구위원(전 국방부 군비통제검증단장)은 북미 간 합의문뿐만 아니라 남북판문점 선언에도 '비핵화'라는 단어는 들어있으나 구체적인 정의는 양측이 다르게 주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은 CVID를 기본으로 미사일,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 전반을 포괄하는 것으로 주장하고 있으나 북한은 '조선반도의 비핵화'라는 개념으로 핵무기뿐만 아니라 남한에 대한 핵우산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주장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그 개념이 1992년 발효된 한반도비핵화 공동선언에 이미 포함되어 있다고 언급해 구체적인 개념을 명시하지 않았다. 따라서 향후 비핵화 협상이 재개된다면 동상이몽에서 벗어나 보다 구체적인 내용과 목표를 가지고 합의해야 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한편 경제 제재와 비핵화의 순서에 대한 견해 차이도 확인되었다. 북한은 경제난 극복을 위해 제재를 푸는 데 중점을 두고 미국과의 협상에 임했고, 실제 하노이 협상 결렬 직후 북한은 기자회견을 통해 유엔안보리 제재결의 중 북한 주민들의 생활에 지장을 주는 부문에 대해 부분적인 제재 완화를 요구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반면에 미국은 일괄 타결 방식으로 정책 선회를 확실히 표명했고, 양국의 입장차이로 인해 북핵 협상의 모멘텀이 꺼지지 않을지에 대한 우려가 지속되었다.

2019년 10월 스톡홀름 북미 실무 협상에 참여한 북한 대표단은 회담 이후 미국의 구태의연한 태도 고수를 문제 삼으며 협상이 결렬되었다고 발표했다. (출처: SBS)

그러던 2019년 6월말, 판문점에서 남북미 3국 정상회동이 이루어졌고, 수 주 내에 북미 실무협상을 추진하기로 합의하였다. 이에 10월 초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개최된 실무협상에서 북한은 대화를 지속하기 위한 선결 조건으로 한미 군사훈련 중단, 경제 제재 완화 약속 등을 제시했다. 미국은 완전한 비핵화, 평화체제 구축, 경제 제재 일부 유예 등을 제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노이 정상회담으로부터 7개월이 지난 후에야 재개된 실무협상이었지만 끝내 양국 간 입장 차이만을 확인한 채 종결되었다. 스톡홀름 협상에 대해 미국은 '성과 있는 첫 만남'이라고 평가하였으나 북한은 '미국의 구태의연한 입장과 태도'를 지적하며 이를 '결렬'로 규정했다.



北 저강도 도발에도... 美 인내 외교 고수

실무협상 이후 북한은 '2019년 말까지'라는 자의적인 기한 안에 미국이 새로운 협상안을 내놓기를 요구했다. 12월 연말 시한이 가까워짐에 따라 북한은 12월 7일과 13일 두 차례에 걸쳐 동창리 미사일 시험장에서 '중대한 시험'을 진행하였다고 발표하면서 긴장감이 높아졌다. 2020년 새해 첫날 공개된 노동당 중앙위 제7기 5차 전원 회의 결정서에서는 '정면 돌파'를 키워드로 삼아 협상 교착과 제재 장기화를 자력갱생으로 돌파하겠다는 선언이 이루어졌다.

이 결정서에는 전략 무기 개발 사업을 중단 없이 진행해 군사력을 강화하겠다는 선언이 포함되었으나 북미 간 대화를 중단한다고 선언하거나, 핵 실험 및 대륙 간 탄도 미사일 실험 중단 약속을 파기하는 내용은 없었다. 이는 미국의 레드 라인을 넘지 않으면서 그 임계점을 넘나드는 도발을 지속하리라는 북한의 향후 방침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총력을 기울이는 가운데, 미국은 외교를 통해 대북 문제를 해결하리라는 원칙을 고수하되 대선 국면에서 북한 리스크가 돌출되지 않도록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는 등 상황 관리에 주력할 것으로 평가된다. 미국 CNN은 트럼프 대통령이 최고위 외교 정책 참모들에게 대선 전까지 김정은 위원장과의 3차 정상 회담을 원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북한의 완전 비핵화가 성사되기 어려운 상황에서 협상 재개로 얻어지는 잠재적 이득보다 그 리스크가 훨씬 클 것이라고 본 것이다.

미국 당국자들은 북한과의 협상을 "느리고 꾸준하며 인내하는 외교"라고 규정하였다. 로버트 오브라이언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등 트럼프 행정부 고위 인사는 북한에 대해 미국 국내 정치 일정에 관계없이 협상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그러나 북한 실무 협상 대표인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를 비롯한 중요 실무자들이 승진하거나 유엔 등으로 소속을 옮기게 된 점은 트럼프 행정부가 북한 문제에 관심을 잃은 징후로 읽힌다.

北 단거리 미사일 도발, 코로나19 이후 뉴 노멀?

2020년 코로나19의 전 세계적으로 확산으로 북한 비핵화 협상에 대한 집중도는 낮아졌다. 그럼에도 미국과 북한, 남북 정상이 코로나19 관련 친서를 교환하는 등 상황을 관리하려는 노력이 이어졌으나 북한은 3월 들어 매주 단거리 미사일을 발사하여 미국을 도발했다.

북한이 3월 2일, 9일, 29일 발사한 초대형 방사포와 21일 발사한 북한판 에이태킴스(ATACMS)는 모두 사거리가 400~600km로, 남한을 타격할 목적을 띤 무기로 평가된다. 북한의 이 같은 행보는 내부 결속을 강화하고 코로나19 팬데믹에도 북한이 건재함을 외부에 어필하려는 목적으로 해석된다. 한편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는 탄도 미사일 실험을 금지한 유엔 안보리 결의를 위반한 것"이라는 지적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이 미국과의 약속을 어긴 것은 아니"라고 두둔한 바 있기에, 북한의 계속된 도발이 안보리 결의 위반이 아닌 '군사 훈련의 일환'이라는 새로운 정상(new normal)으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4월 14일, 북한은 올 들어 다섯 번째 미사일 도발을 감행했다. 이번에는 3월 연이은 단거리 탄도 미사일과 달리 2017년 6월 이후 약 3년 만에 함정 타격용 순항 미사일이 발사됐다. 이는 북한판 이스칸데르 미사일을 포함한 소위 신형 무기 4종 세트의 전술을 업그레이드하려는 작업의 일환으로 평가된다. 또한 북한 전문 매체 38노스(38North)는 상업 위성영상 사진 분석을 통해 북한이 지난 2018년 5월 폐기한 북한 풍계리 핵 실험장에 인력과 차량 이동이 관측되었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38노스는 이러한 움직임이 핵 실험 재개와는 거리가 먼 것으로 분석했다. 반면에 5월 북한 전문 사이트 'Beyond Parallel'은 지난 5월 북한이 평양 국제 공항 근처에 탄도 미사일 개발 프로젝트를 위한 새로운 시설을 짓고 있고, 완공을 앞둔 상태라고 공개하며 전략 무기를 중심으로 한 북한의 도발은 계속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美-北 대화 재개, 당분간 어려워... 그럼에도 대비는 필요

2019년 6월의 남북미 판문점 정상회동 이후로 1년이 지났다. 북한 비핵화 협상은 장기 교착 상태에 빠졌으며 북한은 미국과 남한을 상대로 강경 기조를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1월 신년사, 3·1절 기념사, 4·27 판문점 선언 기념사, 취임 3주년 특별 연설 등을 통해 북측에 독자적 남북 경제협력을 잇달아 촉구했으나, 북한의 반응은 되레 강경했다. 심지어 김여정 노동당 제1부부장은 6월 4일 개성 공단 폐쇄를 언급하고 남북 공동 연락 사무소를 폭파하기에 이른다.

미국이 북한의 도발 위협에 끌려 다니지 않고 장기전을 표방한 만큼 빠른 시일 내에 북미 간 협상이 재개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북한도 코로나19 확산으로 올초 국가 전략으로 내세운 '정면 돌파'전이 타격을 입음에 따라 당분간은 내부 단속에 집중할 것으로 전망된다. '인내 외교'와 '통미봉남(通美封南)'의 전략 앞에 우리 정부가 추진하는 남북 관계를 개선하여 북한과 미국의 대화를 견인하려는 구상은 새로운 돌파구가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남북미 정상회담 이후 북한 비핵화 협상은 장기 교착 상태에 빠졌다. 이런 상황에서 북핵 문제는 이해 당사자 간의 불신을 타개하고 우리나라의 주도적이고 일관적인 정책 추진이 필요하다. (출처: SBS)

한편 통일연구원은 지난 4월 국제정치학·지역학·북한학 분야 전문가 2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조사 결과를 인용하며 비핵화의 최대 수혜국이 되는 우리나라가 북핵 문제 해결에 대한 주도적이고 일관적인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다.

아직 갈 길이 멀지만, 비핵화 협상이 재개되고 타결된 이후의 역할은 선제적으로 준비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이란의 경우 핵협상 합의(JCPOA) 후에도 검증을 통해 비핵화 합의 이행을 확인해야만 안보리 제재가 단계적으로 해제될 수 있다. 2018년 싱가포르 북미정상회담 이후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미 대통령은 사찰 관련 질문에 대해 미국과 국제팀(IAEA) 합동(combination)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백승혁 연구위원은 핵무기 해체 및 비핵화는 미국이 주도하겠지만 모든 부분을 미국이 시행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핵국인 우리나라가 참여할 수 있는 부분으로 핵물질 분석을 꼽았다. 사찰에서 채취한 핵물질 및 시료를 검증하는 과정에서 지리적 이점을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내 핵물질 분석 능력을 지속적으로 향상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북한의 비핵화는 국제적·정치적인 문제와도 결부될 수 있어 현실은 어렵고 요원하지만, 우리나라가 촉진자로서의 역할을 지속하는 것이 한반도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의 안정과 평화에 기여하는 길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