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자력을 평화적으로 사용하고 있는지, 핵무기로 이용하려는 것은 아닌지 살펴보기 위해서는 핵물질이 핵무기용으로 전용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 핵심이다. 특히, 많은 양의 핵물질을 보유하고 있고, 핵물질을 가공하여 핵연료를 만드는 시설에 대한 검증이 중요하다. 이에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KINAC)의 기술지원을 받아 핵물질을 가공해 핵연료를 만드는 한전원자력연료(주)의 시설을 매년 검사하고 있다. 지난 7월 27일부터 8월 4일까지 진행된 한전원자력연료(KNF)의 물자재고검사 현장을 살펴보자.

보고 내용을 토대로 철저한 현장 검사 계획

KNF 시설은 국내 유일의 핵물질 가공시설로 안전조치(Safeguards) 대상이다. 안전조치란 평화적 목적으로 이용 중인 핵물질 및 기술이 핵무기로 전용되지 않도록 하는 계량, 격납, 감시, 사찰 등 일련의 활동을 의미한다. 따라서 KNF의 시설은 핵물질의 양을 계량하여 관리해야 하고, 밀봉 및 격납하며, 주기적으로 사찰을 받아야 한다.

KNF는 핵분열을 일으키는 우라늄-235의 비중이 5% 이하인 저농축 우라늄을 취급하지만, KNF처럼 경수로형 원자로의 연료와 중수로형 원자로의 핵연료를 모두 제조하는 시설은 전 세계적으로도 드물기 때문에 IAEA도 주목하고 있다. 이에 KNF는 매년 정기적으로 KINAC과 IAEA에 핵물질의 계량관리보고서를 제출하고 있으며, 1년에 한 번씩 현장에서 핵물질 물자재고검사(PIV; Physical Inventory Verification)를 받고 있다.

핵물질 물자재고검사(PIV)는 우리나라와 IAEA간의 안전조치협정에 따라 시행하는 국제의무로, KNF와 우리나라에서 제출한 계량관리보고서가 실제 핵물질 재고량과 일치하는지 현장 검증하는 과정이다.

물자재고검사에서는 KNF의 가공공장 두 곳 모두가 대상이며, 경수로형 핵연료제조시설과 중수로형 핵연료제조시설의 핵물질 재고량을 동시에 조사한다. KNF는 각 공정별로 핵물질을 계량하여 관리하고 핵물질의 양, 형태, 위치 등 물자재고검사를 위한 분류 목록을 작성해야 한다. 이때 정확한 검사를 수행하기 위해 핵물질의 생산 공정 간 이동을 방지해야 하므로 검사 중에는 모든 생산 공정을 중단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KNF의 집중 휴가기간을 활용하여 물자재고검사를 수행한다.

KINAC은 본격적인 검사에 앞서 7월 24일 국제핵안보교육훈련센터(INSA)에서 내부 워크숍을 진행했다. 물자재고검사는 기존에 사용자가 보고한 자료를 토대로 현장과의 일치성을 확인하는 것이 기본이다. 따라서 물자재고검사에 앞서 KNF가 제출하고 KINAC이 검토해 IAEA에 제출했던 핵물질계량관리보고서를 확인하고 현장 검증 절차에 대해 논의하였다. 이와 더불어 시료 분석을 통해 검증하는 과정에서 필요한 핵물질 시료 채취 방법과 일정을 협의하였다.

한여름 장마와 무더위 속 평화적 원자력 이용을 위한 땀방울을 흘리다

검사는 IAEA 사찰관 6명과 KINAC 검사원 9명이 참여하여 진행했다. 현장의 날씨는 장마가 아직 가시지 않아 때때로 엄청난 소나기가 내리거나, 연일 매우 높은 습도와 온도의 무더위가 계속되었다. 현장 검사에 참여한 IAEA, KINAC, KNF 직원 모두에게 힘든 환경이었으나 한정된 일정이어서 긴장된 분위기가 흘렀다.

IAEA 사찰관과 KINAC 검사원이 의견을 나누고 있다.

우선 IAEA 사찰관과 KINAC 검사원들은 검사를 위한 세부 계획을 수립하였다. KNF의 핵연료 생산 공장은 경수로형과 중수로형으로 구분되어 있으며 생산 공정과 단계에 차이가 있다. 이 때문에 각 공정과 단계에 맞는 측정지점과 측정물질을 구분하고 흐름도를 구상하였다. 또한 검증과 검사를 정확하게 하기 위한 검증용 장비들을 설치하고, 점검하였다.

현장 검사는 우리나라와 IAEA 간에 사전 합의된 사찰 절차에 따라 수행되었다. 먼저 KNF가 제출한 핵물질 물자재고조사에 대한 보고서와 일치하는 지를 전자파일 및 시설 범용 프로그램(CIOSP; Common Inspection On-site Software Package)을 이용하여 검증하였다. 시설 내 각 구역별로 작성된 계량관리 기록과 운영기록을 검토해 특정 핵물질의 재고 및 변동기록을 확인하고, 사업소의 측정시스템 운영 등에 관한 사항을 점검하였다.

이어진 현장 검증에서는 생산 공장 내부의 공정시설별로 이동하며 육안으로 핵물질의 수량 및 ID를 확인하였다. 육불화우라늄(UF6) 실린더 저장고와 집합체 저장고, 분말저장고, 번들저장고 등 핵연료 가공 이전의 핵물질을 보관하는 주요 저장고에서 그 수량을 전수조사하고 관리표지 확인(Tag Checking)을 실시했다. 그뿐만 아니라 핵물질 저장용기를 무작위로 선정하여 직접 핵물질을 계량함으로써 KNF가 제출한 핵물질 신고사항과 일치하는지를 확인했다.

심지어 자동화 설비로 구축된 저장고의 경우에도 컴퓨터 기록과 별개로 CCTV 등을 통해 하나하나 수량을 확인했다. 핵물질을 가공해 핵연료를 만드는 생산 공정은 물론이고 실험실의 아주 작은 핵물질 샘플까지 철저하게 확인했다. 이렇게 하나하나 확인하다보니 현장 검증에만 4일이 넘게 걸렸다.

실린더를 검증하고 있는 IAEA 사찰관과 KINAC 검사원.

또한 IAEA와 KINAC은 육안으로 식별하기 어려운 핵물질 조성 등의 특징을 현장에서 즉각적으로 확인하기 위해 다양한 검증용 장비를 활용하였다. 육불화우라늄(UF6) 실린더의 경우 고순도게르마늄 검출기(HPGE Detector)를 통해 농축도를 분석하고, 경수로 핵연료 집합체의 경우 검증용 장비(HE-UNCL과 HM-5)를 이용한 측정값으로 우라늄235의 총량을 확인했다. 그 외에도 핵연료의 형태에 따라 여러 다른 장비를 활용하여 핵물질을 검증했다.

현장 검증에서는 장비를 이용한 즉각적인 확인 외에도 정밀분석을 위한 시료를 채취하기도 했다. IAEA 사찰관이 무작위로 샘플을 선정해 KNF에 요청하면 현장담당자가 직접 채취하여 용기에 담았다.

이번 IAEA 사찰은 물자재고 검사가 끝나고 설계정보검증(DIV)도 함께 실시하였다. 설계정보검증은 시설의 구조가 신고된 설계정보와 동일한지 검사하는 것으로, 용도 외로 시설이 개조되거나 이용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확인하는 과정이다. IAEA 사찰관 및 KINAC 검사원들은 KNF가 제출한 설계정보서에 기술된 가공시설 내의 주요 장비의 수량 및 용량 등이 현장과 일치하는지 조사하고, KNF의 각 시설 담당자와 인터뷰를 통해 검증을 진행했다.

사찰이 진행되는 동안 KINAC은 IAEA와 사찰에 관련된 다양한 일들을 논의하고 조율하였다. 검증 시간 및 일정을 초과하는 경우에 대한 계획 수립 및 사업자 통보, 검증대상 핵물질의 측정이 필요하나 현장 사정상 여러 가지 제약이 있을 경우 대체방안 등을 협의했다. 또한 검증 관련 이견 또는 문제가 발생할 경우에는 현장 상황을 고려하여 효율적인 검증이 이루어지도록 이해관계자 간의 조율도 진행하였다.

KINAC 이승민 검사원은 "우리는 KNF의 시설에 대해 IAEA보다는 더 잘 알고 있고, IAEA 사찰과정에 대해 KNF보다는 더 알고 있으므로, 원활한 검사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조율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라고 설명했다. 또한 "원자력을 평화적으로만 이용하는지 사업자를 확인하면서도, 우리나라의 투명한 이용을 국제사회에 확인받는 과정이기도 하다"라며 그 의미를 강조했다.

검사원들은 7일간, 매일의 검사 내용을 기록했다. 검증일자, 검증방법, 검증장비 등 일일 검증활동 요약서를 작성한 뒤 그날의 검사를 마무리했다. 이렇게 작성된 요약서를 토대로 검증상황을 점검하고 IAEA와 지속적으로 검사에 대해 협의하는 것이다. 압축적이며 효과적으로 검사를 수행하고자 하는 노력을 엿볼 수 있었다.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한 KINAC의 노력, 핵물질 시료분석

현장 검증 시 보다 정밀한 분석을 위해서는 시료 채취가 필요하다. KINAC 핵물질분석팀은 이번 물자재고검증에 참여하여 펠렛과 파우더 2종의 공정시료 총 9개를 채취하였다. KINAC은 미신고 핵활동 여부를 분석하기 위해 환경시료 분석을 시행해 왔으며, 공정시료에 대한 독자적인 정밀분석은 2019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핵물질 핵물질 시료 분석은 시료 훼손여부에 따라 크게 비파괴분석과 파괴분석으로 나눌 수 있다. 채취한 시료를 분석하기 위해 KINAC은 다양한 장비를 갖추고 있다. 그 중 마이크로 X선 형광분석기(MMXRF), 주사전자현미경(SEM-EDS)은 비파괴분석에 이용하고, 알파분광분석기, 열중량분석기(TGA), 컴프턴 억제 시스템(CSS), 열이온화질량분석기(TIMS) 등을 사용해 파괴분석을 시행한다.

이번 물자재고검사에서 채취한 시료는 KNF의 신고내용과 일치성을 검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므로, 우라늄 비중 및 함량을 분석할 수 있는 열이온화질량분석기(TIMS), 알파분광분석기, 열중량분석기(TGA)를 이용해 분석하고자 계획을 수립했다. 핵연료는 이산화우라늄(UO2)으로 구성되므로 우라늄 대비 산소 비율을 분석해 우라늄의 총량을 확인하는데 이 과정에서 열중량분석기(TGA)를 사용한다. 또한 열이온화질량분석기(TIMS)를 이용하여 우라늄238과 우라늄235의 동위원소비를 분석하여 농축도를 산출한다. 이러한 분석을 통해 각 시료의 우라늄 총량 및 원소 함량, 방사능 등을 분석하여 신고정보 및 사찰 시 검증한 정보를 비교하여 이상이 없는지 확인한다. 알파분광분석법은 알파 방출 핵종을 측정해 우라늄 동위원소의 양을 분석하는 방법으로 분석 결과는 장비 간 교차분석에도 이용된다.

(좌) 열중량분석기         (우)열이온화질량분석기



이번에 진행한 KINAC의 시료측정 실험결과는 6개월 뒤 IAEA와 기술회의에서 논의할 예정이다. 이번 독자적인 핵물질 분석 결과가 IAEA 분석 결과와 동일하게 나오면 신뢰도를 높일 수 있고 반대로 분석 결과에 차이가 있을 경우 서로의 분석방법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김현영 핵물질분석팀장은 "KINAC은 규제기관으로서 독립적인 검증을 수행할 필요가 있으며, IAEA 및 전문기관과의 교차분석 등 자체 분석역량 향상을 위한 연구개발에 지속적으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렇게 무더운 여름 속 7일간의 길었던 KNF 물자재고검사의 현장검증이 끝났다. 매년 하는 일이지만 검사원들에게는 항상 처음 하는 일처럼 긴장되고 부담이 된다고 한다. 핵물질은 적은 양이라도 분실하거나 보고에 누락하면 원자력의 투명성 및 신뢰도와 직결되므로 이를 확인하고 규제하는 일은 한 순간도 긴장을 늦출 수 없다. 앞으로도 KINAC은 사업자들이 원자력을 평화적으로 잘 사용하고 있는지 확인하여 국가의 핵투명성을 높이는데 최선을 다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