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미국의 대선의 결과가 드러난 2020년 12월, 거의 모든 국내 매스미디어와 국제정치 전문가들은 바이든 행정부의 외교정책을 화두로 삼고 있다. 특히 북한과의 관계 설정과 한미일 동맹, 동북아의 새로운 질서에 대한 분석과 예측, 바이든 행정부에서의 북한 비핵화(denuclearization) 달성 가능성 등 북한과 대한민국을 포함한 극동아시아의 정세 변화에 대한 담론이 넘쳐나고 있다.

대통령 후보 시절 조 바이든의 대외 정책 공약은 1) 민주주의 활성화 및 연대강화, 2) 중산층 국민의 글로벌 경쟁력강화, 3) 글로벌 위협에 대처하는 국제적 노력의 집결이라는 3대 전략목표였다. 그중 세 번째 전략목표의 실천 과제로 미국의 국익 수호, 전쟁 종결, 외교 재활성화, 파트너십 복원 및 재건, 새 시대를 위한 군비통제 체제에서의 미국의 책무 재개, 기후변화 위기에 대처하는 국제적 노력 집결을 제시했다.

국제정치 전문가들은 미국이 군비통제에 관한 책무 재개를 위해 이란핵합의(JCPOA)에 복귀하고, 북핵문제 해결을 위한 북미 실무협상을 재개하며 중국을 포함한 동맹국에 외교적 노력을 강조할 것으로 본다. 또한 미국-러시아간 전략 핵무기 감축 조약(New START)을 갱신하고, 미국이 핵군축 이행조치를 실행할 것이라고 예측한다.1)

바이든 정부의 대북한 정책은 기존의 트럼프 정부 정책을 배척하는 트럼프 지우기(ABT, Anything But Trump), 한미일 동맹국 파트너십 강화, 매파적 관여, 집단 사고의 의사결정(bottom up) 그리고 단계적 접근 방법(phased approach)으로 압축될 수 있다. 2)

1) https://joebiden.com/americanleadership
2) 조한범, 바이든 행정부의 한반도 정책전망과 대응방안, 통일연구원, 2020. (on-line series)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계기로 뫼비우스의 띠 같은 북핵 문제도 끊어내야

바이든 행정부는 북핵 문제를 해결하는 데 이전 정부의 접근 방법과 단절할 것임을 언명했다. 출처: shutterstock

그러나 수많은 담론은 여전히 불완전한 정보와 휴리스틱(heuristic)이라는 직관적 판단에 근거한 분석과 예측이 대부분이다. 또한 북한 비핵화의 협상 과정이나 비핵화 방법론에서 우리나라의 국가이익 차원을 고려한 전략이나 정책 방향을 충분히 논의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북핵 논의는 2006년 1차 북핵 실험 이후 15년간의 도발-제제-협상-파기의 뫼비우스의 띠를 따라 돌면서 이렇다 할 성과를 못 냈고 북한은 향상시킨 핵능력으로 핵위협을 고조시켜 왔다.

그러나 이제는 바이든 행정부 출범을 계기로 우리나라의 국가이익 차원에서 북한 비핵화 대응전략 및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를 고민할 시점이다. 정치, 외교적 차원뿐만 아니라, 경제, 사회, 과학기술 측면에서 우리는 북한 비핵화에 얼마나 준비되어 있는가를 따져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특히 비핵화 검증의 완결은 기술적 확인과 검증을 통해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따라서 외교적 대응 못지않게 기술적 측면에서 우리나라의 역할 정립이 매우 중요하다.

정관정요(貞觀政要)에 "역사를 거울로 삼으면 왕조의 흥망성쇠를 알 수 있다(以古爲鏡 可以知興替)"는 말이 있다. 따라서 우리는 과거의 협상 과정과 비핵화 과정의 실패 원인을 되돌아보고, 북한 비핵화 접근방법에 대한 새로운 사고의 틀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다. 정치 외교적 측면에서의 비핵화 협상 실패의 원인과 문제점들은 많이 다뤘으므로3) 4) 여기서는 기술적 관점에서 과거의 비핵화 과정에 내재된 문제점과 해결 방안을 논의하는 데 집중하겠다.

3) 구본학, 통일정책연구 24권 2호, 2015.
4) 정기용, 투레벨 개임에 대한 새로운 모색, 한국학술정보, 2006.

검증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기준을 설정해야

대부분의 국제정치학자가 제시한 비핵화 협상 실패의 원인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북한은 일관적이고 의도된 모호성, 벼랑 끝 전술, 일방적 합의 파기, 핵보유 기정사실화를 유지해 왔다. 반면 한미 간에는 북핵에 대한 인식 차이가 있고, 대북정책의 일관성이 부재하며, 중국이나 일본 같은 주변국의 변수가 비핵화의 성공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 됐다.

북한과 비핵화 합의를 이끌어내 평화의 분위기가 무르익었다가도 검증 과정에서 불협화음이 발생하는 경우가 잦았다. 이는 검증 과정이 어떠해야 하는지 명확히 설정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출처: 청와대

실용적이고 기술적인 측면에서 비핵화 협상은 비핵화에 대한 정의를 명확하게 하고 단계별 성공기준도 설정해 놓아야 한다. 이제까지의 비핵화의 프로세스는 동결-신고-검증-폐기의 틀을 사용해 왔다. 그러나 각 단계별 경계 조건 및 성공 기준이 애매모호해 당사자 간 공약불가능성(incommensurability)5)이 항상 있었다. 북한은 항상 원칙에는 합의하면서도 검증 이행에 대한 절차적 문제나 선결조건을 문제 삼아 합의를 파기하는 행동패턴을 보였던 것이다. 이렇게 검증과 확인 과정에 대한 공약불가능성은 합의를 위한 또 다른 합의를 만들어 냄으로써 실패로 점철된 비핵화 과정을 낳았다.

그렇다면 왜 비핵화 합의는 이루어졌는데 검증 이행 단계에서 문제가 생길까? 실패 요인은 검증그룹과 피검증그룹 간의 대상 시설이나 물질에 대한 정보 공유 문제, 검증의 범위나 검증 방법에 대한 이견 때문이다. 또한 국제법 학자들의 법규화(legalization) 이론에 따르면 양자 간 또는 다자간의 국제 법규화 과정에서 성패는 구속력(obligation)과 상세성(precision), 권한위양(delegation)의 강도와 명확화에 따라 다르다. 합의 시 당사자 간 합의 결과의 실질적이고 명확한 성과를 기대하지 않을 때 합의과정에서 규칙을 포괄적으로 설정하는 경향이 있다.6)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검증 단계의 이견으로 실패하는 가장 큰 원인으로 합의는 포괄적, 목표 지향적 행동 리스트와 시간표를 정하는 것에 초점을 두는 반면에 검증은 절차의 구체성이나 성공 기준에 대한 구체적 합의 없이 검증 과정에서 이견을 조율하는 형태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비핵화, 불능화,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폐기(CVID),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FVD) 같은 합의 때마다 구체적 정의가 없었고 협상 당사자나 검증 당사자에게 권한위양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또한 새로이 만들어지는 용어로 인해 검증 단계에서 절차의 정당성과 단계별 성공기준에 대한 인식 또는 이해의 비대칭이 유발됐다. 이는 기술사양서(technical specification)없이 시스템의 설계 및 제작을 아웃소싱하는 것과 같다. 비핵화의 경우 정의에 따라 검증 방법론과 수단이 달라져야 한다. 비핵화의 목표가 현존하는 신고된(또는 은닉된 것까지 포함) 핵무기의 제거인지, 핵주기(fuel cycle)와 핵탄두 및 투발수단을 포함하는 미래 핵능력의 제거까지인지, 또는 환경복구까지 포함되는지에 따라 검증 체계, 검증 방법, 검증 수단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핵탄두의 경우는 파괴분석이 가능한지, 비파괴 분석만 허용하는지에 따라 적용되는 계측/검증기술이 달라져야 하며, 완벽성(completeness) 7) 기반 검증의 경우, 모든 핵주기 시설의 핵물질 재고량(inventory)이나 계통 간 핵물질 수지/유통의 계량관리, 관련 재료, 부품 기술의 공급망 체인의 분석이 중요하다. 또한 분석의 상세 정도에 따라 분석 대상 또는 제거된 핵물질을 북한 역외로 반출하는 경우 수출입통제에 대한 법, 제도적 고려가 있어야 한다.

5) 공약불가능성(incommensurability): 토마스 쿤의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서로 다른 이론을 옹호하는 사람들이 서로서로 소통하는 정도에는 커다란 한계가 있다"라는 내용으로 경합하는 두 패러다임(또는 이론) 사이에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기준은 없다는 개념이다. 출처: "과학혁명의 구조",pp 39-43,출판사 까치, 2013.
6) K.W. Albbott et al, The concept of legalization, International organization, 2000, vol.54 No.3, https://www.jstor.org/stable/2601339
7) 완벽성(completeness): 핵무기제조의 전용경로(diversion path)가 완벽하게 없는 상태를 말함. CVID에서 'complete'의 의미는 핵무기급 물질의 전용경로, 무기화과정에 사용될 수 있는 기술, 정보, 인력의 완벽한 제거를 의미

비핵화 검증은 신뢰를 바탕으로 한 협력적 검증이어야 한다

비핵화 검증은 군비통제 및 군축 검증과 마찬가지로 안정성, 예측 가능성, 신뢰 구축의 기반 위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비핵화 검증에서 일반적 호혜성(generalized reciprocity)에 근거한 신뢰 구축은 실질적이고 효과적으로 검증 목표를 달성하는 데 가장 필요한 요건이다.

일부 학자들은 피검증기관의 구체적 정보 제공 없이도 검증자에게 신고 내용이 참이라는 사실을 증명할 수 있다는 영지식 증명(zero-knowledge proof)의 적용 8)을 제안하기도 한다. 그러나 영지식 증명의 경우에도 완벽성, 건전성의 한계와 더불어 검증자는 내용의 참 또는 거짓 이외에는 어떤 것도 알 수 없어야 한다는 한계가 있고 아직은 실험실 규모의 연구들이다.

검증 목표가 핵무기로 전용될 수 있는 시설, 기술, 정보, 인력의 완전한 제거라면, 신뢰구축과 아울러 이에 대한 검증 체계(법, 제도적 체계 포함), 방법론, 기술, 지원 체계에 대한 준비가 우선 실행되어야 한다. 특히 검증 범위에 따른 분석 평가 체계, 정보관리 체계 및 사후관리 체계에 대한 구체적인 기술지원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

신고 내용의 진위여부를 판단하는 정확성(correctness)을 기준으로 할 것인지, 아니면 핵무기로의 전용경로가 존재하지 않음을 확인하는 완벽성(completeness)을 추구할 것인지, 또는 핵무기만 제거할 것인가 등 많은 검증 옵션도 감안해야 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비용이나 국가이익 차원에서의 효과성을 고려하여 핵탄두를 제외한 비핵화 과정에서의 기술적 참여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8) A. Glaser, nature, 26:510, pp497-502,2014


검증 과정에 대한 명확한 정의와 함께 비핵화 검증에 대한 협력적 거버넌스 체계가 실현되어야 한다. 출처: IAEA

만약 합의에 따른 비핵화 검증이 시작된다면, 우리나라 단독의 검증단이 구성될 확률은 낮을 것이다. 미국과 중국을 포함한 핵보유국은 핵탄두나 투발수단에 대한 검증을 하고 우리나라를 포함한 나머지 검증그룹은 시설과 무기급 핵물질의 계량관리 측면에서의 검증과 검증 후 사후관리에 대한 역할을 맡을 것이다.

현재 또는 미래의 핵무기 제거를 목표로 할 경우,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원자력의 평화적 이용에 대한 비확산을 책임지고 있음에도, 북한이 IAEA의 참여를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이 커서 검증 시료의 분석과 평가는 이원화될 것이다. 선별 분석은 현장에서 하고 상세 분석은 미국이나 우리나라에서 할 가능성이 크다.

IAEA는 검증에 직접 참여하는 것보다 분석실험실 네트워크의 일환으로 참여할 가능성이 있다. 따라서 검증 시료 분석 체계와 대상 시설에 잔존 핵물질 재고량을 추정할 수 있는 평가 모델(physical model)의 확보와 검증교육 프로그램들이 시급히 확립되어야 한다.

이에 한국원자력통제기술원(KINAC)은 북한 비핵화와 관련된 검증 기획, 준비, 실행, 유지 등 검증 전 과정과 핵시설의 폐기(제염 및 해체포함) 또는 물리적방호, 역외 반출(국경통과, 수출입통제)을 포함하는 사후관리에 대한 기술지원 고려사항들을 빠짐없이 망라하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표방하는 '동맹을 기반으로 하는 북한 비핵화 추진'에 대하여 비핵화 검증에 대한 협력적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를 들면 한미일의 기존 분석 장비나 인력을 활용하여 핵종분석, 스와이프(swipe) 시료 등에 대한 교차 분석 및 실험실 네트워크를 구성하는 것이 있다. 표준매뉴얼 및 핵물질의 포렌식(forensic)의 핵심데이터(singnature database)를 생산, 공유하는 것도 하나의 협력적 거버넌스 모델이 될 수 있다.

선(先) 비핵화 후(後) 보상 전략기조의 유지는 과거 대북경수로 사업(KEDO) 실패의 데자뷰를 불러일으킨다. 바이든 행정부의 구체적인 북한 비핵화 정책은 2021년 상반기 후반이나 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 사이 우리나라는 바이든 행정부의 북핵 정책과 한반도 평화프로세스의 공유결합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 및 기술지원 체계 구축 전략을 세워야 할 것이다.

또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와 연계한 신뢰 구축의 일환으로 향후 북한의 비핵화 검증 준비 과정에서 요구되는 북한의 검증 준비요원들의 교육, 검증 기술(파괴, 비파괴, 정밀핵종분석 등)과 물리적 평가 모델에 대한 기술 지원을 할 필요가 있다. 이는 비핵화 가치 공유 및 확산과 접용(acculturation)으로 이제까지의 비핵화 협상 실패의 주요원인이었던, 검증 범위 및 방법에 대한 이견을 해소하는 협력적 검증(cooperative verification) 방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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